근처에 강이 있는데 억새와 갈대가 사이좋게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억새는 하얀 꽃을 피우고 갈대는 수수처럼 거므스레한 꽃을 피우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갈대보다 억새가 더 예쁩니다. 가을이 깊어질 때쯤 억새의 흰꽃은 바람에 날아가버리고 붉게 물든 잎만 남지요.
강가로 산책을 나가곤 합니다. 하늘을 수 놓던 청둥오리 떼들이 강으로 뛰어드는 걸 보면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오늘따라 겅중거리던 두루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는 길에 호박을 한덩이 얻었습니다. 가장 작은 놈으로 골랐는데 안아보니 꽤 무겁습니다. 한참을 안고 오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머리에 이니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어깨에 붙었던 고추잠자리가 팔을 휘저으니 날아갑니다. 다시 와서 주변을 맴도는 걸 보니 장난을 치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 몇 분동안 그러다가 제가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날아가 버리는군요. 눈이 잠자리를 따라가다 구름 낀 먼 하늘을 봅니다. 하늘처럼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가을 탓인지 아니면 바이오리듬 탓인지 며칠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성격이라 아주 사소한 일로 이런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면 무엇엔가 전염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합세를 했을 것 같고요.
더 이상 새로운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깝깝한 세월이지요. 시골아낙으로 전락하는 길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하긴 밭을 얻어 무, 배추, 상추를 심었으니 시골아낙이지요.
유유자적 세월만 보내다가 늙어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 라는 말은 언제 쯤에나 들을 수 있을까요?
KIMS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