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을 띤 풀밭에 바람이라도 지나면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거긴 강아지풀이 빼곡히 들이차서 발을 디딜 틈이 없지만 딱 일 년밖에 묵히지 않은 밭이다. 나는 간혹 그곳을 지나치면 불을 싸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바람이 우격다짐하듯 불어대던 날 나는 풀밭에 누워있던 낯익은 물체를 보았다. 그것은 나를 외면하듯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내겐 다행일 수도 있었다.

  가끔씩 등산로에서 그 개와 마주칠 때 개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곤 했다. 개는 단비와 비슷한 이미지였다. 털빛이 누렇게 변한 이유는 황토 빛깔의 흙속에 오랫동안 누워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단비야.”

  개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산 위쪽으로 도망쳤다. 단비라고 부르면 그 녀석은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에 바빴지만 나는 개와 마주칠 때마다 이미 죽은 우리집 개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풀밭에 버려져 있던 개의 사체를 한참 쳐다보던 나는 돌아섰다. 그 개는 단비가 아니었다. 아니 단비일 리가 없었다.

  단비는 몇년 전 12월에 죽었다. 볕이 좋던 날이었다. 나는 이틀정도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미안해서 단비를 밖에 내어 놓았던 것이다.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방에 있던 나는 어렴풋이 비명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하고 문을 열고 나간 나는 두 번째 비명을 들었고 단비가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쓰러지는 걸 보고만 있었다.

  옆집 개에게 물려서 목숨이 끊어져가는 단비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없었다. 단비에게 죽음은 너무 가까웠고 구해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내겐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니 일층과 이층 사이에 놓여 있는 계단은 사해요, 요단강이었다.

  간혹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상상을 할 때면 그 상황에서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진짜 죽은 것도 아니었는데 흙에 묻혔던 단비. 그 후 단비는 흙에서 깨어났고 간신히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얼마간 들개처럼 살다가 무정한 주인과 마주친 것이다. 나는 털빛이 싯누런 그 개를 볼 때마다 그런 상상에 빠지곤 했다.

 묵정밭에 던져져 있던 그 개를 보면서, 나는 단비가 이 세상에서 아주 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제서야 단비에 대한 미련도 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