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창행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카오산로드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택시를 이용했는데 거의 소통이 되지 않아서 방콕의 지도를 내밀었다. 손가락으로 장소를 가리키니 기사는 그때야 고개를 끄덕거린다. 러시아워 시간이라 늦을까봐 조마조마했다. 택시기사가 골목길을 이용하는 둥 나름 애를 쓰더니 7시 30분쯤에 한 골목 앞에서 내려줬다.

대기 장소인 동대문식당에는 태국인 아줌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식당 안에 여행사 사무실이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9시나 되어야 여행사 직원이 출근할 것이니 입 다물고 버스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7시 55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관광버스였는데 코창행 페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에 식당이 있었지만 밥을 먹을 만큼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딸이 편의점에서 과자와 빵을 사왔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흘끔거리곤 했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식당에 있는 사람들 거의가 다 서양인들이었다. 카오산로드 인근이라서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인 듯했다.

가끔씩 좁은 골목으로 들어오는 택시가 우리를 지나쳐서 반대편 골목으로 빠져 나갔다. 승합차 한 대가 우리 곁을 스쳐가면서 뭐라고 했지만 우릴 찾는 건 아니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앳된 남자아이가 다가오더니 우리에게 코창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보니 사람들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코창행 버스를 기다라고 있었다. 딸은 큰길가에 서 있던 독일인 여행객과 한동안 얘기를 나눴다. 두어 달 여행을 한다는 그녀의 배낭은 그녀의 키와 맞먹을 정도로 큼지막했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여행객의 포스가 느껴졌다.

한참을 걷자 4차도로가 나왔고 그곳에서 대기 중인 이층버스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우리 외에 아가씨 두 명이 더 있었고 그 외에는 다 백인이었다. 방콕에서 코창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6시간이라 하니 딸은 걱정스런 얼굴이 된다. 척추와 관련된 질환은 언제 다시 재발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몸을 아껴야 한다.

방콕을 빠져 나오는데 길이 밀려서 버스가 거북이걸음을 흉내 내기도 했다. 세 번째 톨게이트가 마지막이었는지 그 뒤부터는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태국과 필리핀이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를 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 파릇파릇한 논이 눈에 띄기도 했고 가끔은 탈곡을 끝낸 논이 차창을 스쳐 지나기도 했다. 야자수는 논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렀는데 식당겸 매점이 있었다. 낡은 테이블과 색이 바랜 천막이 매우 을씨년스러워보이는 식당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서 먹고 난 다음 입이 텁텁했다. 휴게소의 화장실 변기 구조가 일반 공중화장실과는 달라서 황망했다. 앞부분의 가리개가 너무 짧아 다리에 소변이 튈 정도였다.

태국은 화장실 안에 하나씩 수도꼭지를 두어서 개개인이 배설물을 치우게 한다. 야트막하기는 하나 변기 위에 두발을 올리고 쪼그리고 앉는 구조라서 변기에 올라 갈 때 애를 먹는다. 벽에 손을 짚고 올라가야하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벽이 더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나오면 손을 박박 문질러 씻곤 했다. 옛날 옛적 신문지로 닦고 나오던 시절을 회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두시쯤 되어서 선착장 부근에 도착을 했는데 볕이 뜨거워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매표소에서 이름을 대니 석장의 표를 떼어 줬다. 표를 주던 사람이 딸을 붙들고 코창에서 나올 때 무얼 이용하냐며 자기네가 승합차를 마련해준다고 한다. 코창의 숙소에서 부터 라용까지 책임지겠다는데 전체 비용이 자그마치 이천오백밧이란다. 딸과 얘기를 하던 나는 분명 배 이상 받을 거라며 우리끼리 알아서 나오자 했다. 나올 때 계산해보니 라용까지 천밧 즉 34000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으니 엄청난 폭리였다.

뚝뚝이 내려 준 곳은 선착장이었고 우리는 배를 기다리느라 줄을 섰다. 쏟아지는 볕이 온몸을 축축 늘어지게 한다. 한참 후 배가 왔는데 페리가 아니라 자그마한 여객선이었다. 배 안에는 매점이 있었지만 사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배낭에서 드래곤프루츠라는 과일을 꺼내 깎았다. 수박바라는 하드와 비슷한데 까만 점이 훨씬 많고 빛깔도 그보다 붉은 과일이다. 잘못사면 하얀 빛깔에 까만 점이 있는 드래곤프루츠를 사게 되는데 그건 단맛이 훨씬 덜하다. 겉은 비슷하지만 속 빛깔이 아주 다른, 같은 종류의 과일이라는게 매우 신기했던 과일이다. 처음에는 모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샀던 과일인데 맛있어서 재 구매를 한 과일이기도 하다.

30분이 채 안되어서 배가 코창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숙소까지 찾아가야 했다. 뚝뚝을 이용했는데 승객은 젊은 남자 한 사람과 젊은 연인이 두 쌍, 우리까지 8명이었다. 요금은 개인당 80밧이었다.

백과사전을 검색하니 코창은 울릉도의 5배의 크기이다. 코창 중 코는 섬이라는 뜻, 따라서 창섬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태국에서는 창 맥주가 유명한데 코창에서 따온 이름일 것 같기도 하다.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길을 만들었지만 길이 바다와 가깝진 않은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이 군락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가 탄 뚝뚝은 하염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비탈진 길을 달릴 때면 나는 낄낄 거리면서 무섭다는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여행객들이 오토바이를 빌려 섬을 돌기도 한다는데 가끔 사고도 난다한다. 아름다운 섬이며 관광지역이라서 골고루 발달된 것 같았다. 어쩌다가 폐가처럼 버려진 방갈로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발달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80밧이라는 요금이 비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먼 길이었다. 한 연인이 우리와 함께 내렸다. 그 연인도 우리가 예약한 숙소 '더 스테이지'로 따라 들어왔다. 더 스테이지는 방갈로처럼 생겼고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딸이 캐나다에 있을 때 예약한 숙소였는데 애쓴 보람이 있었다. 우리는 방에 짐을 밀어넣고 숙소의 사진부터 찍기 시작했다.

코창 섬은 필리핀의 보라카이를 닮아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서 복잡한 느낌은 없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음식점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보라카이와는 달리 혼자서 멀거니 앉아있는 늙은 여행자들이 자주 눈에 뜨였다. 여행자로 왔다가 눌러 앉아버린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를 보면서 씩 웃어 보이는 70대의 남자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여행할 수 있는 세월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볶음국수, 흰밥, 생선구이를 먹었고 맥주와 새우구이를 함께 시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망고와 파파야, 리치를 샀고 24시마트에 들러 맥주를 샀다. 아들은 수영을 하면서 마시겠다고 맥주를 들고 나갔다. 수영장에는 유럽에서 온 청년들이 있었지만 함께 온 사람들끼리만 어울려서 얘기를 했기 때문에 떠들썩하진 않았다. 밤이라 첨벙거리는 소리가 커서 나는 애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어차피 내일은 물에서 실컷 놀 수 있을 텐데 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아쉽다는 소리를 연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