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3년 이상 살던 동생이 입국을 했다. 영주권이 이제야 나와서 고향에 오게 된 것이다. 사정상 인천공항까지 가지 못해 광주 터미널에서 마주쳤던 동생은 나를 놀라게 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나와 마주친 사람은 동생을 닮은 나이 든 중년 남자였다.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네가 내 동생 XX이 맞니?”

  조용필의 단발머리라는 노래에서처럼 세월은 청년을 앗아가 버렸다. 물론 나는 10여년 전 동생을 봤지만 내 뇌리에는 자주 대했던 청년시절의 모습이 각인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반백에 가까운 동생의 머리칼을  보니 착잡한 기분이었다. 광주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동생과 우리는 시골로 내려갔다.

  동생은 어머니 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동생은 어머니가 임종하셨지만 미국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세금까지 내고 있었지만 불법체류자였다. 그러다가 작년에야 겨우 영주권이 나왔다. 묘지 앞에 엎드려 있는 동생은 속으로 흐느꼈을 것이다.

  동생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차가운 반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애틋했다. 장남인 동생이 임종은커녕 장지에 갈 때까지, 아니, 어머니가 묘지에 묻힌 지 5년이 되도록 한국 땅을 밟을 수가 없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돌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남매가 없어서 동생에게는 차라리 위로가 되었을까? 동생은 국화 다발을 풀어 묘지에 빙 둘러 세우고 어머니를 바라보듯 묘지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셔서 원망스러웠을 것 같았다.

  참으로 이상한 점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그 동생의 습성이 아버지를 똑 닮았다는 사실이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식탁 앞에 앉으면 우선 숟가락질부터 한다. 옆 사람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처럼 껄껄거리는 웃음이라니...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게 딱 맞는 말이다.

  시골집에서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자겠다며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통화를 하면 아버지가 밉다는 소리를 늘어놓던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날 나는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풀려서 단잠을 잘 수가 있었다.

  동생은 미국에서 가게를 운영하는데 제법 잘된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만 받고 한국에서 재취업을 하겠다는 동생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건 아이엠에프 때문이었다. 아이엠에프가 동생에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셈이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물론 동생은 한국에서 한국전력에 근무하고 있었으니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나 해야 할까? 그동안 동생이 워낙 열심히 살았으니 노력한 만큼 얻어진 결과랄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 동생이 살고 있으니 미국 땅을 밞는 건 시간문제이다. 아니 내겐 돈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가족이나 친척들이 미국에 다녀오는 게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동생은 시차에 적응할 무렵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의 묘소를 다녀오고 가족과 친지, 또한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니 그만큼 발걸음은 가벼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