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튿날부터였다. 그날은 록키산맥의 수많은 봉우리 중 최고봉인 랍슨마운틴과 조우하는 날이었으며 세계의 10대 절경인 레이크루이즈호수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랍슨마운틴은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는데 하필 날씨까지 흐렸다. 가끔씩 눈을 뿌려서 옷을 껴입어야 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캐나다의 밴쿠버쪽은 따뜻하지만 록키산맥을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은 초가을부터 춥다. 

랍슨 마운틴의 높이가 4000미터를 육박하다보니 꽤 멀리에서도 그 봉우리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사진을 찍기 위해 인포메이션 앞에 모였을 때도 구름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랍슨 마운틴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온전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차가 달리는 동안 먼발치에서 랍슨마운틴의 완전한 자태를 잠깐씩 보기도 했다. 가이드는 랍슨마운틴을 향해 신비감을 가진 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지만 내 보기에는 심술궂은 봉우리 같았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를 가기 전 보우강에 들렀다. 마릴린먼로의 대표적인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수많은 관객들이 그녀의 탄력 있는 몸매와 눈을 사르르 감은 채 배시시 웃는 모습에 매혹 당했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강의 영화화보에는 보우폭포가 담겨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우폭포는 폭포의 길이가 짧아서 영화에서처럼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록키산의 빙하가 녹아 흘러드는 곳이 보우강이다. 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시리다는 보우강이 흘러내려 폭포를 만들고 폭포가 흘러내려서 계곡을 만든다. 아니 계곡이라기보다는 협곡에 가까운 모양새이다. 폭포보다는 협곡이 훨씬 운치가 있는 것 같다. 날씨가 꾸물거려서 보우강 주변의 풍경을 제대로 살리지못해 아쉽다.

차가 한참을 달리니 자스퍼 국립공원이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우리는 설상차를 타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부근의 건물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점심을 먹었던 그 건물에는 기념품가게와 카페 식당등이 있었고 널찍한 주차장이 두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서 멀리 컬럼비아 아이스필드가 보였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설상차 뒤를 따라 길을 내려갔다.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산 옆으로 길이 나 있고 오르막길이다.

차는 오르막길을 따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거긴 눈길이었다. 차가 가는 길이 아닌 평평하고 넓은 나대지에 난 길을 바라보는데 아이스필드가 보이고 뜻밖에도 그 아래 주차장이 있었다. 설상차를 이용하지 않고 아이스필드로 가는 길목인 것 같았다. 승용차가 대부분이었고 더러 버스도 보였는데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더러는 줄을 지어 아이스필드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 때문에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인근에서 사진을 찍었다.

캐나다는 영토가 넓어서 지역마다 시차가 난다. 여러 주를 지나쳐왔기 때문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면 몇 번이고 태엽을 빼어서 시간을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휴대폰을 로밍해 왔기에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지역마다 다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다음코스는 잠깐 들린 에메랄드호수였다. 때마침 가랑비가 내려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 에메랄드호수 주변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역시 에메랄드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답게 물빛은 신비했다. 비안개 때문에 뒤쪽의 록키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았다. 끝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져서 단풍잎을 연상케 하는 에메랄드레이크야말로 캐나다를 상징하는 호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의 국기에는 빨간 단풍이 새겨져 있지만 록키산에서 보기 드문 게 빨간 단풍나무여서 내내 좀 아쉽기는 했다. 대신 노란단풍은 쉽게 볼 수 있었다. 캐나다의 백미 레이크루이스는 다음 편에 싣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