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부러진 계단을 오르니 그냥 도로이다. 그래서 좀 허전한 건가? 우리는 인도를 따라 걷다가 육교로 올라갔다.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라 무작정(?) 따라 간 거다. 알고 보니 샤또 프롱트낙 호텔로 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불어이니 무시하고 지나는 수밖에 없다. 가이드를 해야할 사위와 딸은 따로 가고 나는 남동생 가족에게 붙어 다닌다. 아들은 우리 뒤쪽에서 천천히 오고 있다.

육교에서 세인트 로렌스 강을 필름에 담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퀘벡은 거의 숲속에 자리한 도시이다. 캐나다야 땅이 워낙 넓고 인구가 적으니 자연을 거의 훼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돌아서 보니 샷또 프롱크낙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잘 보이는 걸 보니 규모가 굉장한 호텔인가 보다. 조금 걸으니 호텔 앞에 조성된 광장이 펼쳐진다.

챗바퀴를 도는 아가씨가 보이고 구경꾼들도 보인다. 그녀는 풍물시장에서 사람을 끌어 모으는 엿장수처럼 인기가 많은가 보다. 곧 재주를 부리겠지만 나는 그냥 지나친다. 점점 광장이 넓어진다. 광장이 세인트로렌스 강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난 강을 거슬러 걷고 있는 중이다. 광장이 나무판자로 만들어져서 맨발로 뛰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다.

샤또 프롱트낙 호텔은 가까워질수록 낡아 보인다. 하긴 1893년에 개업을 하였다하니 그럴 수밖에. 여행을 하던 그날 호텔에 들어가 볼 생각을 못했다는 게 지금도 아쉽다. 당시 나는 그 호텔이 쉽게 들어 갈 수 없는 호텔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 검색을 했을 때 호텔 내부를 둘러 본 사람들의 글이 올라와 있어 기분이 씁쓸했다.

 우리는 도깨비언덕인 아브라함 평원을 가기 위해 광장 끝까지 걸었다. 모노레일도 보였는데 멈춰서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아브라함 평원으로 가는 뒷길이 보였다. 아브라함 평원은 프랑스군과 영군군의 교전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길을 한참 걸어가자 아치형의 입구가 보였다. 관람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들어가진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안을 잠시 들여다 볼 수는 있었는데 건물이 있었고 잔디밭에 꽂아진 깃대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사람은커녕 총대를 멘 군인조차 없어 텅 빈 느낌이었다.

언덕이 제법 높으니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땐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브라함 평원에서 언덕을 따라 죽 내려왔고 거기서부터 뒷길로 걸었다. 앞쪽으로 내려오면 계단이고 샤또 프롱트낙 호텔로 이어지는 길인데 막혀 있어서 뒷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앞쪽은 번화가인데 뒷길은 지나칠 정도로 후미졌다. 길 옆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 도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누런 빛깔의 동물이 두 마리가 놀고 있었다. 먹이를 찾는지 주둥이로 낙엽 더미를 뒤지다가 우리가 아는 척을 하자 도망을 쳤다. 네 발로 허공을 휘저으며 달리는 그놈들을 보면서 마치 총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구리인가 하고 딸에게 물어보니 족제비라고 말한다. 꼬리가 탐스러운 걸로 봐서는 족제비가 맞는 것 같다.

그곳에서 죽 걸어가니 앞쪽의 도로와 만난다. 걷다보니 관광객들이 점점 많아진다. 나도 다른 관광객들처럼 이 건물 저 건물을 기웃거린다. 우리는 흩어졌다 모이고를 반복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세인트로렌스 강 쪽으로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게다 강으로 가는 길은 지나치게 내리막길이다. 내 다리도 내 머리에 시그널을 보내는 중이다. 이미 많이 걸었다고.

딸과 사위는 크리스마스 용품이 가득찬 가게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쇼핑을 하게 된다면 걸리적거리는 물건이 될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6개월이나 남았으니까. 내 걱정을 덜어주느라 딸은 아이쇼핑으로 만으로 끝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광객들은 점점 줄어든다. 가게 앞의 홍보용 등에는 이미 불이 들어와 있다. 사위가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라면서 D’youvill 이라는 피자가게를 가자고 한다. 낮에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알고 보니 D’youvill 거기에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걸어가는 동안 되돌아 갈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피자를 한판 시키고 샐러드도 시켰다. 지쳤던 탓인지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오니 건물 밖이건 안이건 형형색색의 불이 켜져 있다. 우리는 달라 보이는 건물을 다시 구경하면서 걸었다. 조금 더 가니  목 부러진 계단이다. 계단을 내려가자 샹플랭 거리는 이미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앞서갔던 딸과 사위는 그네에 앉아있었다. 하얗게 불 켜진 화분을 보자 딸과 사위가 신혼여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과 사위는 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사진을 찍어주면서 커플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