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주의사당- 

   딸이 바닷가의 작은 길로 들어선다. 해안선을 따라 난 길은 구부러졌다 펴졌다를 반복한다. 그쪽의 길도 꽤 운치가 있다. 바다를 도심이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호수 주변을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둘레길 주변의 근사한 펜션들은 발코니에 꽃이 풍성한 화분을 놓아 관광객을 유혹한다.

한참 가다가 거짓말처럼 나타난 게 fisherman’s wharf 였다. 관광객을 상대로 소소한 걸 파는 가게들, 그게 수상가옥의 시작이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도시의 일부분을 떼어다 놓은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두 줄의 집 사이에 작은 골목이 있어서 그 사이를 걸을 수도 있었다. 집과 골목이 나무판자 위에 얹혀있어서 바닷물이 우르르 밀려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몸무게가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곳의 집들이나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 다 소품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장사를 하는 가게가 많진 않았다. 놀랍게도 그 부근에서 작은 여객선을 탈 수 있었다. 많이 걸었던 탓에 돌아가는 길은 배를 이용하기로 했다. 배 삯은 약 오불 정도. 우리 외에 한 가족이 더 탔는데 부모를 따라왔던 아이가 우리를 힐끔거려서 쳐다보면서 웃어주었다.

바다 중간쯤 가다가 뜻밖에도 물개를 만났다. 알고 보니 배가 다닐 때 물개가 얼굴을 내미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먹이 때문이라는 것. 한국에서도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흔한 광경일 수도 있겠다.

저녁은 계획한대로 초밥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갈 식당이름은 스시스토리. 딸이 함께 일하던 한국인 부부가 새로 낸 초밥가게이다. 호주에서 정착하고 싶어 7년 동안 머물렀지만 결국 포기하고 캐나다로 온 부부.

그들은 아들을 데리고 호주로, 호주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왔단다. 한국에서도 한때 제주도에 살았다하니 삶의 이력이 특별하다고나 해야 할까. 내 딸도 피지에서 호주로, 호주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왔지만, 미혼일 때 옮겨 다녔으니 그들보다는 훨씬 수월한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구글 맵으로 찾아 온 가게인데 도무지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밤이라 답답한 생각도 든다. 그러던 중에 내가 가게를 발견했다. 큰길 쪽이라 생각했는데 가게가 약간 안쪽에 있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게가 너무 넓다. 손님은 한 테이블 뿐. 우리를 무척 반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잘된다고 하니 내 마음도 뿌듯하다. 그렇지만 후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일단 좀 넉넉히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데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색이 예쁘다. 나는 색감 때문에 더욱 초밥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이모가 내 딸더러 신랑과 함께 오라고 한다. 딸은 레이디스미스의 스시가게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이모라고 불렀단다. 만리타국이니 서로 의지해가면서 사는 게 정답이라 느껴진다.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있었던 우리는 그들이 태워 준 승용차로 다시 주의사당까지 왔다. 낮과는 달리 주변이 휘황찬란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일부러 불을 켜 놓은 것 같았고, 주의사당은 네온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너하버의 요트들도 불빛을 받아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돌아오는 길에 예쁜 펍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길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희한하게도 펍에는 사람이 많다.

게스트하우스 부근은 조용하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싸구려 느낌이 드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여자 셋 남자 둘. 여자들은 마치 술집 색시처럼 화장도 요란하고 옷도 요란한데 상당히 늙었고, 남자들은 젊어 보이긴 하지만 노숙자처럼 꾀죄죄하다. 자세히 보니 물고 있는 게 일반 담배가 아니라 마리화나이다. 이미 봤지만 못 본 척 지나가야 한다. 한편 여자들이 섞여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숙소로 들어선다.

1층엔 아직 사람들이 있었지만 3층으로 올라오니 조용하다. 조심조심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딸이 소곤거렸다, 아침식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걸 먹자고.

짐을 꾸려 놓은 다음 내려오니 커피냄새와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프런트 옆이 주방이라서 정신이 없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낡은 소파에 앉아 접시를 든 채 식사를 하고 있다. 안쪽으로 테이블도 있지만 이미 만석이다. 우리는 아침으로 빵과 커피, 바나나 반개를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니 어제 밤늦게 봤던 남녀 셋은 사라지고 없다. 어젯밤에 그들을 보았던 게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노숙자들이라 해도 늦은 시간까지 자기는 어려울 터. 나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잠깐 훑어봤다.

스왓츠베이항으로 가는 버스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층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옆자리에는 중년의 남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말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목소리를 죽여 말을 했고 때론 말없이 창에 대고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빗물이 차창에 흘러내려서 동영상은 엉망이 되었고 사진은 더 형편없었다.

밴쿠버로 돌아오는 페리에서 치킨샐러드를 먹었는데, 들어 갈 때 먹던 치킨볶음밥처럼 맛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행이라는 들뜬 분위기에서 먹는 음식이라서 그저 맛있기만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