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모음
|
|
|
|
|
:: 벚꽃이 눈처럼 내리던 날
청풍에도 벚꽃이 만개했다. 쨤을 내어 가기로 했다.
왕건 촬영지라서 주말이면 번잡스러운 곳이다. 게다 축제 기간이다보니 길이 상당히 밀린다. 나는 버스를 타고 청풍을 그냥 지나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가로수처럼 서있는 벚나무의 아랫둥치만 볼 수밖에 없다. 뒷쪽에 서있던 나는 뒷창을 통해 밀려가는 풍경을 보았다.
번지점프를 하느라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이 아스라히 보인다. 축제 장소가 가까워오자 버스의 승객들은 흥분이 되나보다. 차 안까지 울려대는 노랫소리에 이끌리듯 사람들이 내린다. 나와 몇몇 승객들만 버스에 남는다.
종점을 향해 달리는 버스는 너무 조용하다. 도착하는 정거장마다 노인들이 차례로 내려 나중에는 기사아저씨와 나만 남는다.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다. 종점에서 내리지 않고 다시 돌아가서 청풍의 벚나무 사이에 내려다 달라니 기사가 그러마고 한다. 차비는 두배로 내야하는데 한몫만 받겠단다. 기사의 미소가 참 부드러워 보인다. 기사에게 차는 종점에 받쳐두고 술이나 한잔 하자할까?
버스가 종점에서 잠깐 머물렀고 나는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거의 출렁임이 없는 강물은 유난히 푸르다. 물을 가두고 있는 옆 산들이 붉은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다. 잔풀이 우거져있는 한뼘 크기의 뭍은 장마가 한번 지나면 흔적을 감추리라. 기사가 차에 올라 나를 부른다. 나는 청풍으로 차가 돌아 나올때까지 기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한다.
청풍에는 꽃잎 비가 내리고 있다. 마치 장 구경을 나온 듯한 매무새의 시골 노인네들도 더러 눈에 뜨인다. 나는 천막을 친 음식점에 앉아 꽃과 사람들을 보면서 동동주를 마신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보는 벚나무 터널은 한결 운치가 있다. 계산을 마친 나는 보도블럭을 따라 휘청휘청 걷는다.
"외로우세요?"
나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승용차 문을 열고 웃는 사람은 아가씨다. 길이 막히다보니 거북이 걸음이 지루해서 내게 장난을 치는 것일 게다.
나는 손가락 두개를 쳐든다.
"외로운 것이사 둘이 있다해도 마찬가지래요."
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내 또래의 아주머니가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 제기랄... 남자가 말을 걸었어야 뭔가 일을 만들지. 오늘도 공치는 날이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다. 벚꽃의 향기가 진하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으니까...
|
|
김은숙 2006-06-24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