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었을 때의 기분은, 목욕을 끝마친 후 목욕탕 문을 나서는 느낌과 흡사하다. 가끔씩 나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읽는 내내 버거운 산을 오를 때처럼 갈등을 하기도 한다. 중간에 내려갈 것인가 정상까지 오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때로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덮어버리지 못하는 건, 책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엊그제까지 읽었던 책은 ‘살인의 해석’이다. 워낙 흡입력이 강한 책이라서 사흘 안에 책읽기를 끝냈지만 사실 내용 파악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제드 러벤펠드의 작품인데 500페이지가 넘는 긴 장편소설이다. 제드 러벤펠드는 법률학자이고 예일대 법과 대학원 교수이니 영재를 뛰어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가졌던 문학에 대한 꿈을 ‘살인의 해석’에서 이뤄냈다.

미국 각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는 이 책의 초판부수는 18만 5천부였다고 한다. 책을 분류하자면 스릴러물이며 추리소설이다. 다빈치 코드처럼 흥미진진하지만 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신분석학자와 신경학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고, 살인이 일어난 까닭 또한 사디즘이나 마조히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겐 책읽기가 마치 고난도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살인의 해석’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프로이트와 카를 융이 등장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이론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 살인의 해석을 읽으려면 먼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강의를 읽으면서 반신반의를 하기도 했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작가 또한 그런 의도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하긴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 어찌 눈앞의 사물처럼 명확할 수 있으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접했고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도 읽었던 까닭에 두 학자가 어떤 형태로 등장을 할까 내심 궁금했다(내겐 두 학자들의 책읽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프로이트만을 비중 있게 다뤘고 카를 융은 좋지 않은 면만 드러내보였다. 소설에서 카를 융은 매우 신경질적이면서 여자를 밝히는 학자였으며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만 골라서 했다. 추리소설의 재미를 위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카를 융이 비중 있게 다뤄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의 학설이 중심소재로 다뤄진 건 아니었으니까.

소설의 도입부 배경은 1909년 8월 29일 미국의 호보켄 항구이다. 프로이트와 카를 융, 페렌치라는 학자가 미국 방문을 위해 배에서 내리는데 그들을 맞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화자이며 청년 심리학자이다. 1909년을 얘기하느라 화자는 주변의 빌딩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조지 밴월이라는 건축가를 입에 올린다. 그가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인물인데 화자와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다. 다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떠올린 이름일 뿐이다.

잠시 후 화자는 한 정신병원에 대한 얘기도 한다. 마치 셔터 아일랜드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정신병원과 흡사한 그 병원에는 해리 소라는 환자가 입원해 있다. 해리 소 또한 소설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는 미모의 여자들도 등장을 한다. 그 중 액튼 노라는 17세 소녀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인이다. 클라라는 25세인데 조지 밴월의 아내이며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미모이지만 나이 탓에 노라보다는 조금 뒤처지는 외모이다. 백설공주에서 등장하는 계모와 백설공주, 그들의 외모를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까닭에 검시관과 형사가  등장한다. 휴겔검시관보다는  리틀모어라는 다소 어눌한 형사를 주목하라.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노련한 휴겔검시관보다는  리틀모어가 사건의 열쇠를 맡는 적임자라 생각했던 것 같다. 심리학자들도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데, 그 부분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물론 학자마다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내용을 전부 얘기하면 안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일인칭과 삼인칭을 혼합해서 썼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라는 화자의 비중이 크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물론 마무리에서는 꼭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문장도 전혀 허술하지 않고 특히 복선이 치밀하고 정교하다. 작가는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 같았다. 저자의 해설에서도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음을 얘기하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좋은 작품을 보면 우선 질투부터 하고 다음에는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은 마냥 나를 기다려 주진 않을 것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 글을 써야만 하는데 나른한 봄날이니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