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니언 여행에 대한 생각에 일찍 일어났다. 옥스퍼드 팰리스 호텔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주변의 상가에서 차를 마신 후 출발할 예정이었다. 로데오라는 이름의 종합상가였는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거의 한국인들이라는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라 오픈되지 않은 가게들이 많았다. 우리는 찻집에서 천천히 차를 마셨고 가게들을 둘러보다가 과일가게로 갔다.

                                                      -로데오 종합상가가 멀리 보인다-

우리가 고향을 전라남도에 두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우리와 나이가 비슷했던 아주머니의 고향이 고흥이었다.  아주머니는 5킬로그램의 사과를 한 상자 사니까 먹어보라며 열 댓개나 되는 자두 봉지를 손에 들려줬다.

객실로 돌아와서 자두를 씻어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던 자두와는 맛이 천지차이다. 검은 빛을 띤 큼지막한 그 자두가 눈에 익어 생각해보니 캐나다에서 먹던 자두였다. 캐나다의 과일은 미국산, 남미산도 많다. 우리는 객실에서 짐을 싸면서 자두와 사과 너덧 개를 씻어 봉지에 담았다.

객실에서 나와 차를 타고 잠시 이동해서 규모가 큰 슈퍼마켓을 들렀다. 사야할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무젓가락 컵라면 따위도 사고 김밥도 샀다. 이제부터는 차로 계속 이동해야했기 때문에 준비를 단단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서 외곽도로로 나왔다. 엘에이에는 헐벗은 산이 많았다. 차가 달리는 중에 본 HOLLYWOOD 라는 글자가 잠깐 다가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헐벗은 산 중턱에 입간판처럼 쓰여 있는데 워낙 규모가 커서 엘에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은 더욱 헐벗기 시작했다. 12시쯤 차가 멈춘 곳은 작은 휴게소였다.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을 들고 차에서 나왔다. 둘러보니 휴게소가 주변이 온통 사막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네 기둥에 지붕이 얹힌 건물이었고,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의자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사막 가운데라서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휴게소의 간이 화장실이 어찌나 더러운지 식후에 들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다음으로 차를 세운 곳은 온도탑이 있는 장소였다. 온도탑 아래쪽으로 원형모양의 구조물이 있는데 거기에서 계란이 익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른자가 딱딱해져서 얼핏 플라스틱 음식처럼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온도탑을 올려다보았지만 화씨라서 섭씨로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110 정도면 43도쯤 될 거라고 동생이 말한다.

9월 1일의 온도가 그 지경이니 여름의 한복판인 7월 중순은 어떨까? 아마 한낮에는 유령도시처럼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 시간 그 거리에서도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물론 주변에 사람이 많이 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새 다섯 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다-

온도탑 곁의 나무를 쳐다보던 나는 몇 마리의 새들을 발견했다. 그놈들은 나무 그늘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폐가 될까봐 가까이 가진 않고 사진만 몇 장 찍었다. 우리는 그 주변만 서성이다가 다시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갔다. 차를 타려고 바짝 다가서니 승용차의 표면에서 대장간 냄새가 난다. 

바깥 풍경이 달라져 보인다. 바위산이 점점 끝나가고 점차 벌판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허허벌판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벌판에는 마른 풀이 깔려 있고 자그마한 나무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선인장 종류인 것 같은데 생김으로 봐서는 거의 쓸모가 없을 것 같다.

사이사이 버려진 집들이 나타난다. 우기가 짧고 여름이 엄청 긴 곳이니 뭐든 제대로 갖춰진 대도시가 아니라면 살기 힘들 것 같다. 캘리포니아에서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더 더운데 나이 든 사람들은 오히려 선호한다고 한다.  이유는 겨울이 따뜻해서란다.  나의 경우에는 땀을 지나치게 흘리는 체질이라서 집을 주면서 거저 살라 해도 고개를 흔들 것 같다.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동생이 검색을 한다. 가까운 곳에 스시가게가 있다 해서 우리는 반색을 했다. 듣기에도 생소한 지역인 헬렌 데일. 도착해서 보니 깔끔한 마을이다. 초입의 몇몇 집들은 현관문 앞이 흡사 동굴 입구처럼 만들어져 있어 중동지역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스시가게 규모는 열 댓 평쯤 될까? 서양에서는 초밥도 테이크아웃이 보편화 되어있으니 넓지 않아도 장사가 잘되는 경우가 많다. 자리에 앉으면서 둘러보니 뒷문으로 연결된 바깥공간이 널찍하고 그 앞에 인공호수가 펼쳐져있다. 날씨가 선선하다면 그 자리가 최적일 것 같다.

호수는 거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었다하는데 우리나라의 산정호수를 떠오르게 할 만큼 규모가 크다. 작은 배들도 있고 강가에는 나무재질로 갑판을 만들어 배가 들락거리기 용이하게 되어있다. 해질 무렵에 갑판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그만일 것 같다.

안주인은 한국인인데 바깥주인은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일만 하는 그를 보면서 어림짐작을 해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베트남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까.

테이블이나 벽면에는 여기저기 손때가 묻어 있다. 안주인에게 더운 곳에서 어찌 지내냐고 물으니 밤이면 시원해서 더운 걸 모르고 산다는 대답을 한다. 맨 먼저 나온 건 음식은 색색의 소스가 뿌려진 롤 초밥이다. 몇 접시가 나왔는지 숫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배부르도록 먹었단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식후에는 바깥으로 나가 풍경 사진을 찍고 호수 건너까지 두루두루 살펴봤다.

애리조나를 벗어나서 한참 네바다 주를 달리는데 다시 애리조나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가끔씩 야자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도시가 나타나 사막 속의 오아시스를 연상시킨다. 앞으로 우리가 여행할 곳은 그랜드케니언, 후버댐, 데스벨리 그리고 라스베가스 등등인데 모두 다 사막 속에 있는 관광지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애리조나 주에 있는 월리엄스 호텔. 일층이었는데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주차장 겸 마당인 그런 호텔이었다. 창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시끄러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미국 영화에서 자주 보는 호텔, 일자 스타일의 오래된 건물이라서 선입견이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