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제롬의 특징은 대부분의 산들이 거의 구릉에 가깝다는 거다. 너른 땅에 나무가 돋아나고 그게 자라 숲이 되고 또 산이 된 것 같았다. 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립공원이 있어 다녀왔는데 산을 따라 난 길 대부분이 평평했다. 산과 산 사이에 넓은 강이 있었는데 물이 굉장히 많았고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햇살이 좋은 강가의 너럭바위에는 수영복 차림의 젊은 남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공터에는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무엇인가를 먹기도 했지만 거의 싸들고 온 음식이었다. 캐나다의 국립공원에서는 술과 취사도구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숲길 주변에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었는데 주변에 멍청한 딱따구리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판자로 된 벽이 연발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에 자국이 있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때 보면, 산탄총에서 탄알이 나가는 것보다 빠르게 고개를 움직인다. 움직임이 마치 자동인형 같다고나 할까.  나무에 낸 구멍도 총알 자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숲에서 마주친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나는 딱따구리로 인해 나무가 죽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을 했다.  

    그 숲에는 나무를 재료로 써서 만든 사람이 있고 말도 있는데, 그 공원의 특징인 것 같다. 나무 조각을 자잘하게 깎아서 붙였는데, 마치 짚을 붙인 것처럼 허술해 보인다. 다가가서 만져보던 나는 감탄을 했다. 말이나 수레에 쓰인 나무는 몇 천 조각은 될 것 같다.

 영지버섯처럼 보이는 버섯을 보면서 갈등도 했지만 채취할 수는 없었다. 국립공원에서 무엇인가를　채취하다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한다. 고사리나 고비도 흔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희한한건 고비를 마트에서 팔고 있다. 세인트제롬은 한국인들이 거의 없는 곳이니 한국인이 아닌 누군가가 고비를 식용으로 쓴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니 중국식당이나 베트남식당에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과는 달리 퀘벡주의 봄 날씨가 차갑다보니 거의 유월 말까지 고비나물을 슈퍼에서 볼 수 있나보다. 7월에 접어드니 고비도 마트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딸아이는 7월 중순에 아기를 낳았다. 산후 일주일부터 딸은 나와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 정도는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하는 게 산후조리이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우리나라에서의 산후조리가 오히려 문제가 있다한다. 딸은 출산 전날까지도 운동을 했었다. 첫 출산이었지만 딸은 6시간 정도 진통을 하다가 애를 낳았다. 말하자면 상당히 쉽게 출산을 했던 것이다.

 산책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양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 자전거를 탄 사람, 웃통을 벗은 채 달리는 남자, 개를 데리고 가는 사람,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중고생들, 롤러스케이트를 탄 채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애기엄마, 더러 운동을 즐기는 70대 할머니도 있었다. 봉쥬르, 헬로우.. 그들은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고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숲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라서 시원하기는 했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한낮을 제외하고는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모기들은 항상 등 부근만 물어댔다. 뒤쪽을 공격하니 비열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특히 가려 울 때 긁기 어려운 위치라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걷기운동에는 그 길보다 더 좋은 길은 없어 그 후로도 계속 이용할 생각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소나기가 쏟아지곤 했기 때문에 여름을 보내기가 수월한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발코니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7월의 비는  반가운 손님이나 마찬가지였다.

 7월 말쯤이었는데 하늘이 어둑해지고 새소리가 극성스러워서 발코니에 나가니 무서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일더니 구름들까지 경주마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하늘을 메운 구름이 무슨 짓을 할지 알수 없었기 때문에 두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에어컨이 없는데도 지낼 만 했다. 7월 중 35도 이상 기온이 올라간 날은 열흘 정도였다. 낮에는 무더웠지만 밤엔 열대야가 없는 게 그곳의 특징이었다. 10여일 정도 선풍기를 쐰 것 같은데 여름이 가버렸다. 7월이 끝나면서 무더위도 끝이 났다. 퀘벡주의 8월은 가을의 시작이었다.

 가끔 몬트리올에 나가기도 했지만 예전만큼 매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남은 건 사진 몇 장. 돌아 올 때 들렀던 시장에서 과일 몇 개를 사온 게 전부지만 꽃가게에 진열된 꽃들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