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꽤 떨어진 골프클럽이 웨딩장소였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여름의 끝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더웠기 때문에 오후 5시부터 예식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로비 옆 식당으로 갔다. 콩나물비빔밥, 전복죽, 우거지해장국, 임연수어구이 등등 거의 한국식 음식이었다. 나는 임연수어 구이를 선택했는데 생선이 꽤나 싱싱했다. 생각해보니 엘에이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크게 불만이 없을 것 같았다. 향수병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엘에이 여행은 하지 못했다. 동생네가 엘에이와 9시간 떨어진 오리건 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생략되긴 했지만 글을 쓰려니 못내 아쉽다. 동생은 플로리다 주에서도 살았고 애리조나 주, 엘에이 이런 식으로 집을 몇 번씩 옮겨 다닌 이력이 있다.

 오전 시간은 느긋했다. 엘에이는 우리네 한여름처럼 푹푹 찌는 날씨였다. 동생네 가족은 아침을 먹은 후 예약된 미용실로 갔고 우리는 호텔에서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어봤다. 나는 작은 올케가 건네준 프리사이즈의 새파란 원피스를 입기로 했다.

점심 식사 후 바로 출발했다. 가면서 보니 숙소에서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꽤 유명한 골프클럽인데 연회비용이 비싸다는 것 같았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세련된 느낌의 정원을 가진 골프장이었다. 연회장으로 쓰일 그 정원의 나무 울타리는 가위질을 해서 각이 잘 잡혀 있었다. 하얀색의 의자가 잔디밭에 열을 지어 놓여있었고 빛나는 햇살이 풍경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가 선 건물의 그늘까지 밀려드는 후끈한 기운만 아니라면 아름다운 팔월의 마지막 날일 것 같았다.

예식은 햇볕의 열기가 누그러지는 6시쯤 시작될 예정이었다. 더위 때문에 한 시간 더 미룬 것 같았다. 건물의 로비 쪽 귀퉁이에 간단한 음식이 놓였고 쟁반을 든 종업원 몇이 사람 사이를 돌아다녔다. 술은 안쪽에 있었는데 바텐더들이 포도주와 칵테일을 잔에 따라서 사람들 손에 건네주었다. 예식장을 빌려 식을 올리는 광경에 익숙했기 때문에 나름 고조되는 기분이었다. 집의 뜰에서 예식을 올렸던 딸의 결혼식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하객은 한국인이 많았지만 미국인 숫자도 결코 적어보이지는 않았다. 주례는 한국말에 매우 서툰 어느 교회의 목회자였다. 교포 2세쯤 되는 것 같았다.

울타리를 넘어 온 긴 햇살이 주례와 신랑 신부에게 계속 쏟아지고 있었지만 주례사는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목사가 영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지루한 것 같았다. 신부의 뒤쪽으로 넓게 파인 드레스 탓에 등이 점점 빨개졌고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양복을 입은 목사의 인내심도 대단한 것 같았다. 주례사가 엄청 오래 걸렸으니 말이다.

주례사가 끝나자 드레스를 입은 신부 들러리들과 턱시도를 걸친 신랑 들러리들이 연단으로 나와 하객들의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은 후 음식이 기다리는 실내로 들어왔다. 실내의 연회장에서는 신랑신부와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계속 흥겨운 시간을 이어갔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