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홍연의 배역을 맡았다. 화면에서 전도연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너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의 촌스러움도 그곳에 초임으로 발령 받은 선생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화장실도 안가는 사람 같은 고결한 이미지의 여선생 이미연.

부임하던 날 강선생(이병헌)은 홍연에게 학교 가는 길을 묻으며 아가씨라는 호칭을 쓴다. 순전히 그것 때문에 담임인 강선생에 대한 짝 사랑은 시작된다. 하긴 홍연이 17살이나 먹었으니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만... 홍연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하지만 설정이 억지스럽진 않다. 1963년이 배경이니 그 시절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처녀 총각도 있었다.

강 선생은 아름다운 노처녀 양선생(이미연)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방에 누워 아이들이 제출한 일기장을 읽으며 낄낄대는 21살의 풋내기(?) 총각이다. 강 선생의 양 선생에 대한 사랑은 깊어만 간다. 물론 일기를 통해 홍연이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것을 강 선생은 잘 알지만 아마 사춘기 소녀의 단순한 열정 같은 걸로 생각해 버린다.

주인공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거기다가 시골 풍경을 적절히 배치해 영화의 묘미를 더해준다. 불이 난 학교 건물에 들어간 강 선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홍연. 아마도 그것 때문에 강 선생과 홍연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 듯 하다. 물론 양선생이 그 학교에 오래 머물었다면 결과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도 문제점이 많다. 1963년인데 시골학교에 소화기가 있었다니... 불이 나니까 곧 소방차가 와서 끄는 장면도 다소 억지스럽다. 그 당시에는 불이 나면 동네 사람들이 바께스를 양손에 들고 물을 날랐다. 몇몇 사람들은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서 바께스의 물을 받아서 불을 껐다.(바께스라는 단어는 일본말인데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쓰니 양해를...) 도시에서 그 마을까지 소방차가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야 옳지 않을까? 능청스런 송옥숙(홍연 어머니)의 연기는 좋은데... 김밥 재료가 너무 호화스럽다. 단무지 계란 등등...하지만 그때는 계란조차도 먹어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깡 보리밥을 먹던 시절이었으니까. 홍연이네는 초가집인 만큼 부자도 아니다.

교실의 아이들의 입성이 너무 호화롭다. 나는 그때 다우다라는 재질의 (오리털 대신 스폰지를 넣은) 잠바를 겨울에 입고 다녔다. 그 안에 스웨터나 골덴 천으로 된 옷을 입었는데 앙고라 털로 짠 스웨터가 아니라 505라는 실로 짠 그것도 손으로 짠 스웨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화학사 스웨터였다. 1963년쯤의 사진을 보면 내 말이 공감이 가겠지만 그때 나는 대여섯 살이었는데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러나 두 번 보면서도 식상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소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애틋한 사랑과 잘 어우러진 시골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사랑의 결실은 우리를 안도하게 한다. 홍련의 여학교 때의 모습이 잠깐 비쳤다면 너무 급작스런 끝맺음이라는 아쉬움이 남지 않았을 텐데... 여자들은 모험적인 사랑을 좋아하면서 그 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아이러니한 사고를 갖고 있다.

리얼리즘 영화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있어도 용서가 되는 것 같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럽다고나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