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야 한다는 것
재작년 삼월, 집을 얻으러 왔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희망이 사라져버린 삶 때문에 서울을 떠나야했으므로 막막한 심정이었다. 나는 서산을 향해서 조금씩 내려가는 태양을 보면서 버스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이어서 풀기가 빠진 몸이었고 그래서 더욱 흔들렸는지도 모른다. 서쪽을 향해 차가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온기를 잃어 가는 해가 눈에 계속 들어왔고 나는 그 해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김포 시내의 부동산에서 권하는 아파트는 지금 내가 지역이었다. 시내에 속하는 지역은 비쌌기 때문에 나는 들 한가운데 자리한 이 아파트를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큰 도로변으로는 뼈대만 올라간 아파트가 즐비했고 안쪽으로는 완공된 아파트가 있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기 때문에 완성이 덜된 아파트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진한 어둠 때문에 그것들은 흉물스럽게 보였고 몇 동의 완공된 아파트도 입주자가 많지 않아 을씨년스러웠다. 삼월이었지만 날씨까지 차서 내 마음속까지 으스스 한기가 돌았다. 계약서에 도장을 누를 때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살다보면 정이 든다 하던가. 운동을 한답시고 더러운 수로를 따라 다니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나를 반기곤 했다. 푸르른 들이 금빛을 띠어갈 때쯤 몰려다니는 고추잠자리, 날아드는 참새 떼들, 수로의 우렁을 표적으로 비행하는 부리가 까만 두루미... 그런 것들은 내게 친숙한 사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할 상황이 되었다.
떠나도 미련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어제 부동산을 다녀온 후 나는 다시 몸에 풀기가 빠져 버렸다.
나는 한 달 후쯤 제천으로 가게 된다. 그 주변에도 여러 가지 사물들이 있어 나를 반길 것이지만 적응을 할 때까지 나는 외로우리라. 얼마나 오랫동안 낯선 방에 누워 불면으로 밤을 뒤척여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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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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