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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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 (책을 읽고...)
요즘 여름은 여름이 아니다. 고전에 등장하는 계모와 같달까. 오던 가을을 가로 막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름이라는 짐승. 좁지 않은 방이지만 선풍기가 돌고 내 등에서는 땀이 흐른다. 들판이나 산이나 초가을빛은 완연한데 그렇다면 나만 여름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일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접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상황묘사와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그의 작품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하면 놓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잇달아 그의 작품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쥐스킨트는 세상과의 교류를 싫어하는 은둔형이다. 비둘기의 주인공인 조나단 노엘과 과 흡사한 성격을 가졌다고나 할까. 차라리 자폐에 가까운 좀머씨가 좀더 쥐스킨트와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 곱추 그르누이는 살인자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이다. 향수는 다소 몽환적인 느낌의 소설이다. 그렇듯 쥐스킨트는 특이한 감성으로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그려낸다. 그의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비둘기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은행 경비원이다. 아내도 없이 혼자 사는 그는 불우하게 태어났지만 직업을 갖게 되면서 삶이 차츰 나아져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공동 주택에 세를 들어 있으며 화장실이 따로 있어 아직은 생활이 불편한 상태이다.
생활이 점진적으로 나아진다는 것은 꿈을 향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나단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있기도 하다. 그건 다름아닌 아담한 자신의 집을 장만한 다는 것이다.
그의 그런 꿈이 산산이 조각나는 것은 한 마리의 비둘기 때문이다. 출근 준비를 하던 조나단은 흉물스런 비둘기 때문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세면대에다 용변을 누면서 상황이 뒤죽박죽이 된다.
아무리 소심하다한들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그럴 수가 있을까? 쥐스킨트는 0.1% 정도도 안 될 가능성을 가지고서 소설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내고 있다.
온종일 머리는 헝클어지고 일을 그르친 조나단은 비둘기에 대한 상상때문에 집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늦은밤 호텔에 투숙한 조난단의 귀에 들리는 소리...그건 천둥과 번개였고 떨어지는 요란한 빗소리였다. 이튿날 아침 호텔을 나서는 조나단은 정신세계가 자유로워졌음을 느낀다.
어쩌면 현대인은 조나단과 같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말하자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세상이며 조나단의 삶과 닮은꼴이랄까. 문득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그 책을 집어 든다면...혹자는 읽는 동안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옮겨다 놓았다고 생각한다면 해결책도 있으리라.
어쩌면 나는 비둘기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향수를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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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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