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년 전에 산 세무 신발을 신고 다니는데  안쪽이 너덜거린다. 덧붙여 말하자면 신발 안쪽의 모습은 남루한 내 일상 그대로이다. 그러니 신발을 벗을 때마다 내 얼굴빛은 흙빛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일 때는 더욱 곤혹스럽다. 모임 같은 때 식당에서 우르르 나오게 되면, 나는 가장 빨리 또는 가장 늦게 신발을 신는 게 상책이다. 

  물론 딴 신발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운동화를 즐겨 신고 다닌 탓인지 조금 모양을 갖춘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하면 오 분이 채 되기 전부터 후회가 된다.  사족을 달자면 집에 있는 신발도 제대로 내게 맞는 게 거의 없다. 게다가 나는 나이가 많고 몸무게가 좀 나가는 편이라서 캐주얼화가 편하다.

  내가 신발 타령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발이 남자 발이라서 그렇다. 여자의 몸에 달린 남자 발이라....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나는 여자이므로 여자의 발이 틀림없다. 생긴 모양도 여성스럽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발 사이즈는 대략 얼마나 될까?  내가 알기로는 225밀리미터에서부터 250까지이다. 그러니까 그보다 더 작은 발이나 더 큰 발은 여자의 발이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이십대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참혹하다. 그 당시에는 어쩌다 250 사이즈의 신발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늘 신어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명 제화 가게에는 핸섬한 남자 종업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신발 가게에 손님이 들어서면 깍듯하게 대했다. 그들의 태도로 봐서 판매 실적으로 봉급이 결정되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겨울날 부츠를 하나 샀는데, 영화 같은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는 쓴웃음을 짓곤 한다. 내 다리는 남자 종업원의 무릎에 올라가 있었다. 신발을 신기는 남자와 멋쩍은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나. (나는 한 다리로 서 있다) 내 기억으로는 버선 신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겨우 겨우 신었다. 부츠를 신고 서 있노라니 압박감에 발이 저릴 정도인데 종업원은 내 발에 맞다고 우기는 것이다. 신발은 신으면 늘어나기 때문에 처음에 딱 맞아야만 한다고... 순진한 나는 그 신발을 샀다. 돈이 아까워서 어기적거리며 신고 다녔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신발은 내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나 마찬가지였다. ( 그 이야기의 원작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신데렐라가 되기 위해 그 신발을 탐냈던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발뒤꿈치를 잘라내야만 했다는...--;;)

  아무튼 지금까지도 나는 그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신발을 맞추면서 발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맞춰 신어도 신발을 내 발에 맞게 해주는 경우가 드물다. 신발의 앞 가장자리가 발등을 누르는데도 신으면 늘어나서 맞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견해이다. 그러니까 나는 구두를 신는 내내 고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요즘엔 빅 사이즈를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다. 분명 발등이 높으니 그 부분을 크게 해 달라는데 신발이 오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판매자들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한때 나는 유명제화 사장에게 메일을 보내는 걸 고려해 보기도 했으나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그제던가. 설날인데 딸을 데리고 목포의 제화점에 들렀다. 물론 유명메이커이다. 마침  255사이즈가 몇 켤레 있었다. 쳐다볼 때만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역시 신발은 내 발이 들어가자 조임쇠로 조이는 것처럼 발을 압박한다.

  "누가 내 발을 사정없이 밟는 것 같은데요?"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종업원은 웃으면서 안 되겠다는 말을 한다. 종업원이 딴 신발을 찾아 창고를 헤매는 동안 지배인에게 묻는다. 남녀 공용은 없느냐고...

 지배인이 남자 신발 코너에서 한 켤레를 들고 온다. 신어보니 딱 맞다. 좀 여성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남성이 여성화되어 간다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딸년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니, 보기에 괜찮냐? 잘 고른 것 같지?"

  딸에게 묻자 킥킥거린다.

  "고르긴 뭘 골라. 그야말로 딱 한 켤레가 발에 맞아 산 건데..."

  생각해 보니 딸의 말처럼 고른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만족스럽다. 이 디자인의 신발을 신고 있는 남자와 마주치게 된다면 장난이나 칠까? 댁과 나는 커플인 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