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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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여자의 하루
몸을 창 쪽으로 뒤척이면 유리창으로 기어오른 햇살이 얼굴을 쓰다듬는다. 족히 9시는 되었으리라. 눈을 뜨지 않고 잠을 더 청한다. 10시... 어느 집이 이사를 가나보다. 사다리차를 타고 물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소음에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일어나야겠다.
냉장고를 열어봐야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다. 식욕도 없다. 냉동된 갈치 한 토막을 꺼내어 튀긴다. 아이러니한 건 맛있게 먹지 않아도 절대 몸무게는 줄지 않는다.
이혼할 무렵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소리를 들어야했다. '몸무게도 좀 빼고 가꾸어야 남자를 소개하지...' 나는 좀 뚱뚱하고 거의 맨 얼굴이다. (원래부터도 체격이 컸다. 거기에 나잇살이라는 것까지 껌처럼 달라붙어 있다.) 그 말에 의하면 나를 좋아할 남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억지로 살을 빼진 않을 거고 화장도 안 할 거다. 문신을 해야 하고 점도 빼야하고 코도 높여야하고 옆구리 살도 저며야하고...(나는 앞니가 토끼처럼 튀어 나왔지만 사십 칠년 째 모른 체 하면서 살고 있다. 아마도 밥 먹고 키스하는데 별 지장을 못 느끼면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성형외과 의사에게 애교만 떨어서 해결되는 일이라면 벌써 해결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짜니까...
세이 클럽에 들어가면 나이별로 채팅방이 있다. 음란물로 도배된 방이다. 방제들이 읽기에도 낯이 뜨겁다. 젖게 해드릴게요... 밤이 무서운 연상녀만...사진 보며 얘기할 여성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그쪽으로는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문학 방처럼 고상한 곳에만 갔었다.
이제는 그 방에도 태연하게 들어간다. 물론 그래도 좀 제목이 나은 것으로 골라서 간다. 낯 뜨거운 제목은 배설적인 목적으로만 붙인 것 같아 싫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컴섹과 폰섹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렁저렁 거기서 시간 보내다가 글자라도 몇 자 찍어보려고 한글 창을 열면 하품만 나온다. 자판 위에 손을 얹어놓고 멀거니 있다가 운동화를 꿰고 밖으로 나온다.
수로를 따라 난 들길을 가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본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궁색하게 사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생활이 넉넉하면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나의 하루는 타작이 끝난 보릿대를 태우는 것처럼 항상 허망하다. 게으르다는 말을 하는 것에도 염증이 나서 이왕 소가 될 바에는 좋은 가죽으로나 남겠다고 한다. 나는 빈 머리에 몸뚱이만 걸친 여자...혼자 사는 여자...ㅎㅎ.. 터벅터벅 걸으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다.
길을 따라 난 수로에서 노을이 탄다. 논마다 물이 가득 담겨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내 발길을 따라 잦아든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술 생각이 간절해 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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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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