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 모르는 꽃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침이면 추위를 예고하는 서리가 자주 내린다. 앞 두 동의 아파트 때문에 그늘 속에서 하루가 간다. 두 동의 간격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기도 하지만 극히 짧은 시간이다. 꼭대기 층에서 살았다면 온종일 해가 들이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십 층을 바라보면 무시무시한 번지점프가 떠오른다. 참고로 나는 그네 타는 것조차 무서워한다. 따라서 번지점프는 구경하러 갈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젠 추워서 대낮에 운동을 하러 다닌다. 물론 게으른 탓에 날마다 하는 일은 아니다. 낡은 기계처럼 뻑뻑해진 몸을 풀기도 해야하고 몸의 비계 층이 더 두터워지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도 이삼일에 한번씩은 운동을 해야 한다. 오늘은 개를 데리고 산너머 모르는 마을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 왔다.
김포는 엎어놓은 조가비 모양의 낮은 산 밖에 없다. 만만한 산이라 길을 가다가 산속으로 난 샛길을 더듬어 올라가곤 한다.
묘지 부근 풀밭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스해 보인다. 쉴 요량으로 가까이 가는데 보랏빛 꽃이 보인다. 가을에 피는 꽃은 대강 아는데 무슨 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보니 놀랍게도 진달래이다. 한두 송이가 피어있는 게 아니라 만발해 있다. 날아드는 벌도 없는 초겨울인데 진달래라니... 철모르는 꽃이다. 해마다 봄에 피었을 건데 망령이 들었나 ?
사람이라면 4-5살이 철모르는 나이이다. 그런데 철없는 건 아이 뿐만이 아니다. 냉정한 눈으로 보자면 어른들 중에서도 철없는 사람이 많다. 나도 철없기는 마찬가지다. 분명 철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철이 없어지는 걸까?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리송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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