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창을 들어갈 때는 여행사를 통했기 때문에 쉬웠지만 나올 때의 상황은 달랐다. 우리 스스로 알아서 나와야 했기 때문에 딸의 영어실력만 믿어야했다. 코창의 선착장에서 바다를 건너면 뜨랏 선착장. 뜨랏의 선착장에서 뜨랏의 버스정류장까지 뚝뚝이나 승합차로 가야하고, 뜨랏의 버스정류장에서 라용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야하는데 어디서 타야하는지 모르니 물어물어 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라용에 숙소를 잡아놨으니 거기까지 무조건 가야만 했다.

날씨를 미리 알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라용에서는 사흘 정도 비가 이어진다는 예보였다. 우산보다는 비옷을 입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현지에서 구입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지역이든 편의점이  많아서 그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솔직히 여행 중에는 배낭이건 뭐건 무게가 나가는 건 고역이었다. 나와 딸은 배낭과 캐리어를 아들에게 맡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들이 우리의 편의를 봐주느라 스스로 택한 일이었지만 고마움도 미안함도 잊고 있었다. 뜨랏에서부터 라용까지 네 시간 정도 걸린 다는 소리를 듣고 딸이 기함을 하기도 했다. 나도 차를 타는 시간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코창의 숙소 앞에서부터 출발한 뚝뚝은 중간에 사람을 놓쳤다. 그들이 손짓을 했는데도 보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사각지대에 서 있긴 했지만 그들은 우리가 탄 차를 기다리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들의 손짓과 몸짓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는데 기사는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뭐라고 얘기 하자 기사가 돌아보긴 했는데 그때는 이미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한참 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 오토바이 한대가 우리가 탄 뚝뚝을 잡았다. 오토바이에 탄 남자가 그 사람들을 태우고 가라는 말을 전했다. 짐작하기에 그 사람들은 그 시간대에 차를 타지 않으면 일정에 큰 차질이 있는 것 같았다. 차를 돌려 그 사람들을 싣고 왔음에도 먼저 탄 승객들은 항의를 하지 않았다. 차를 놓쳤던 그 사람들만큼 급박한 승객은 없었던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코창 선착장에서 같은 배를 탔다.

배가 출발하고 20분이 지나자 우리는 내릴 준비를 했다. 짐을 짊어지고 1층으로 내려와 주차된 차 사이에 섰다. 오 분쯤 지나자 뜨랏선착장이라며 내릴 준비를 하라는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뜨랏 선착장에서는 사무실에 들러 라용까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 물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보니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뜨랏정류장을 가기 위해 뚝뚝을 잡아탔다. 중간에 나이든 유럽커플이 커다란 배낭을 각각 하나씩 들고 동승했다. 부부인 것 같았는데 아내의 짐이나 남편의 짐이나 무게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부부평등이라는 게 그런 부분까지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십여분이 흘렀을까.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구름이 뚝뚝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퍼지는 중이였다. 비가 오자마자 우리는 즐거운 탄성을 내질렀다. 비가 좀 들이치기는 했지만 시원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뜨랏의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는 주룩주룩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류장으로 뛰었다. 매표소를 겸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차양 아래 앉아있었다. 낡은 의자도 있었고 긴 나무 의자도 마련되어 있어 불편함은 없었다. 매표소에서 간단한 과자를 팔고 있었는데 그 옆 오토바이 가게에서는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음료수는 안의 냉장고에 있었고 오토바이에 쓰이는 물건들을 밖에 내어놓고 팔고 있었다.

우리는 정류장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의자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표를 끊으면서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알아버렸던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건너편이 뜨랏 시내였지만 비가 와서 다녀올 수도 없었다.  비가 내리는 탓에 또한 말이 안 통하는 탓에,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를 멀거니 바라보는 것으로 관광을 끝낸 셈이었다.

한 시간도 더 지나서야 라용으로 갈 버스가 왔다. 미니 이층버스였는데 일층에는 경찰관처럼 제복을 입은 안내양이 타고 있었고 운전석은 이층에 있었다. 밖을 보는데 문득 비가 멎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소나기성 비라서 오래가진 않는 것 같았다.

라용에 도착해서는 운송수단이 달라서 애를 먹었다. 거기에서의 뚝뚝은 시내버스 역할만 하고 있었고 승합차나 승용차가 택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 표식이 따로 없었고 승합차 겉면의 페인트 빛깔로 택시인지 승용차인지 구분을 해야 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숙소가 큰 도로에서 멀지 않았다. 우리는 도로변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렸기 때문에 그 장소에서 뚝뚝을 타도 되었지만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좀 걸었다. 조금 후에 뚝뚝을 탔지만 운전기사 또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엉뚱한 곳에서 내렸다. 다시 타고서 반대 방향으로 가야했는데 또 지나쳐 버렸다. 숙소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호텔이라서 버스기사가 위치를 몰랐던 것 같았다.

겨우 찾아 들어간 호텔에는 젊은 아가씨가 있었고 앞서 온 손님의 체크인을 돕고 있었다. 앞사람은 태국인이었는데 뭐가 그리 복잡한지 시간이 좀 걸렸다. 우리의 여권을 가지고 여기저기 복사를 했기 때문이 아들이 화를 냈었는데 알고 보니 신입이었고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아가씨는 누군가와 통화를 했고 겨우 일을 마쳤다.

깨끗하다는 평이 있어서 왔는데 외국손님들은 거의 들지 않는 숙소인 것 같았다. 방은 깨끗했지만 상당히 비좁았다. 짐을 방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육교를 건너 나란히 서 있는 택시 근처로 갔다. 우리가 가는 곳은 해변의 씨푸드레스토랑이었는데 한국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한다.

도로가 혼잡했기 때문에 기사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이 워낙 깜깜했기 때문에 내가 ‘납치 당하는 기분이군, 이라고 하자 다들 한바탕 웃었다. 시내에서 빠져나가자 불빛이 거의 없는 호젓한 길이 나타났다.  씨푸드레스토랑이 지나치게 한적한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깜깜한 길을 이십분 가까이 달렸을까. 마침내 입구가 보였다. 들어가면서 보니 차가 즐비하고 사람들도 많다. 테이블이 있는 장소로 가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한 음식점이다. 실외에 식탁이 놓여있는데 주변이 바다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는 엄청 북적거리는 곳이라 한다.

창 맥주를 하나 시킬 때마다 맥주를 들고 와서 미소를 짓던 곱상한 아가씨는 창 맥주 홍보요원이란다. 맥주에 취해서 음식도 꽤 많이 시켰다. 보리새우회를 먹었고 바닷가재, 관자놀이찜. 신선로에 담아왔던 어묵생선탕. 야채와 새우살 따위를 버무려 롤에 싸서 튀긴 음식. 아마 태국여행 중 가장 포식을 했던 밤이기도 하다. 아들이 쓴 돈은 대략 7만원 정도. 라용에서는 씨푸드에 들러 음식을 먹고 이튿날 잠깐 시내를 둘러본 게 고작이다.

이튿날 버스터미널에 가면서 잠깐 뚝뚝을 탔는데 마침 영어선생을 만났다. 그녀가 우리에게 웟 캔 아이 두 포 유 라는 말을 걸어왔다. 딸과 둘이 한참 얘길 하는 걸 보면서 그 여자선생님 또한 영어로 얘기할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 선생님 덕분에 버스터미널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한국의 읍내 터미널처럼 협소했는데 버스는 보이지 않았고 승합차만 즐비하니 있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한 시간 반 후에 출발하는 승합차의 표를 끊었다. 우선 근처를 둘러보고 싶어서 주변을 빙 도는데 멀리 테스코라는 대형마트가 보였다. 내게 맞는 사이즈가 있어서 티도 몇 개 샀고 팬티도 100밧에 석장을 샀다. 잘 늘어나고 빨면 잘 마르는, 여행자에게 알맞은 팬티였다.

테스코에서 나오니 다시 열기가 목구멍까지 밀려들어온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딸이 에어컨이 빵빵한 식당에 가자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니 오픈된 가게들 사이에 문이 있는 가게 하나가 눈에 띈다. 바깥에서 요리는 하지만 손님들은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고 프랜차이즈음식점이었다.

앉아서 차림표를 보는데 가격이 요상한 글씨로 표기되어있다. 알파벳과 비슷한 느낌의 글씨. 태국은 영어를 혼용해 쓰는 국가가 아닌데 전화를 받을 때는 엘로우라고 한다. 내 보기에는 좀 아이러니하달까.

주문한 국수를 가져오는데 그릇이 좀 작다. 양이 얼마되진 않았지만 음식에 닭봉 하나씩 들어있었다. 태국 사람들이 워낙 적게 먹어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가격을 계산하면서 이해가 갔다. 우리가 먹은 국수는 한 그릇 당 겨우 15밧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그릇이 좀 커서 의아해 하던 참이기는 했다. 우리는 승차 오 분 전까지 터미널에 가기로 하면서 커피와 과일주스를 나쵸와 비슷한 느낌의 과자를 더 시켰다. 과자와 주스를 다 먹은 후 모카커피가 나왔는데 크림, 설탕, 커피의 비율이 잘못되어 맛이 지나치게 달면서도 썼다.

승합차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왔던 우리는 직원과 가벼운 실갱이를 해야했다. 우리가 한 시간여전에 떠나버린 승합차의 표를 끊었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현지 언어를 쓰지 않는 이상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할 것 같았다. 우리가 탄 승합차에는 택배 물건까지 실려 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 앉을 곳이 없어 우리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천장이 낮고 유리가 완전하게 밀폐된 구석자리의 의자에 앉았다. 비좁은 의자에 앉아있자니 갇힌 기분이었다. 순간 나는 차가 물에 빠진다거나 전복된다는 상상을 했고 호흡곤란 증세를 겪었다. 폐쇄공포증인 것 같았다. 그네나 미끄럼틀을 무서워하던 어린시절은 있었지만 폐쇄공포증은 처음이었다. 다행이도 자리가 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앞자리로 갔다. 택배가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자리였다. 가끔씩 택배물건에서 닭소리가 나곤 했지만 공포증은 말끔히 사라졌다. 우리가 탄 승합차는 4시간 정도 걸려서 방콕에 도착했다.

승합차가 터미널 안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지 않았기 때문에 터미널 주변에서 헤매기도 했다. 터미널을 가기 위해 택시를 멈춰 세우는데 기사가 건너편을 손가락질 했다. 알고 보니 육교만 건너면 버스터미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은 시간이 남아서  방콕 버스터미널 앞까지 왔다가 짜뚜짝시장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이층버스가 터미널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좀 놀라웠다. 터미널의 규모도 엄청 컸는데 희한하게도 우리가 탈 아유타야 버스는 없었다. 우리는 터미널의 외곽에서 승합차를 타야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이층버스가 아유타야를 가지 않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아유타야로 가는 승합차의 요금은 50밧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무서워서 뒷자리에 타지 않았지만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킨 그 승합차와는 천장 높이가 달랐다. 라용터미널에서 탔던 그 승합차의 천장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걸 그때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