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버스는 각각 오후 1시와 2시 반에 출발하고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비행기가 30분 정도 지체될 거라는 얘기를 아들에게 들었기 때문에  나는 2시 반 버스를 타기로 했다.

난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면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사람이라서 버스를 타던 기차를 타던 대기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편이다. 물론 비행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2시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음성 혁신도시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6명이나 되는 승객들이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 버렸단다. 혁신도시에서 1시 30분에 타야하는데 증평으로 내려와서 2시 30분 걸 탔으니 1시간 반을 허비한 셈이었다.

개념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여객기 출발 시간을 물어봤다. 탑승시간이 8시와 8시 반이라고 한다. 그들은 두 팀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걱정 마세요. 저는 그보다 더 빠른 비행기입니다. 내 말에 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기분이 풀린 그녀들이 까르르 웃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웬 소란이냐고 물어서 6명의 승객에 대한 설명을 했다. 버스를 출발시키던 운전기사는 금요일이라 길이 막힐 거라면서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다시 혁신도시를 들렀고 그 이후부터 속력을 높여 달렸다. 서울이 가까워지자 버스는 88도로가 아닌 영종대교 쪽으로 향했다. 인천공항 쪽으로 가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한산한 도로로 가기위해 그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인천공항 앞을 지나 김포공항으로 갔고 거기서 일부 승객들을 내려주고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갔다. 운전기사의 말을 들으니 2시 반 버스는 보통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도착한단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시간에 쫓길 수 있었기 때문에 내겐 무척 고마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무려 한 시간 정도 연착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했다. 우리는 뒤쪽 좌석을 배정 받았다. 탑승을 한 후 실내를 살펴보니 빈 좌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아들이 선반의 가방을 뒤지더니 무엇인가를 꺼냈다. 진공포장지 속에는 오징어 다리가 들어 있었다. 나는 불량식품처럼 보인다면서 받아서 앞 의자의 주머니에 넣었다.

카트가 돌자 아들은 캔맥주 하나와 백포도주를 샀다. 백포도주는 내가 마실 알코올 음료였다. 아들은 캔맥주에 오징어 다리를 뜯었고 나도 딱딱한 오징어 다리를 우물거리면서 백포도주를 마셨다. 캔을 비운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소음만 귓속으로 밀려 들었다. 잠깐 눈을 떠서 통로 쪽에 앉은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 영화 강철비를 보는 중이었다.

딱딱한 오징어 때문인지 속이 거북했다. 나오려던 방귀를 참아서 그러는지 속이 미식거리기도 했다. 통로로 나가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들이 곤히 자고 있어서 참았다. 잠깐 후 내 목과 등 쪽으로 진땀이 흐르더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아들은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승무원을 불렀다. 나는 승무원에게 체한 것 같다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때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승무원이 가져다 준 소화제를 먹고 따뜻한 물도 마셨지만 정신은 점점 희미해졌다. 화장실에 가야한다며 일어나는데 무릎이 꺾여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들이 겨우 나를 통로로 밀어냈고 승무원이 내 어깨를 잡더니 화장실로 끌고 갔다. 화장실과 거리가 5-6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걷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나는 통로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겨우 도착한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었다. 승무원은 나를 계속 붙들고 있었고 아들은 나더러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화장실에 있던 청년이 나오자마자 나는 엎어질 까봐 벽을 붙잡으면서 들어갔다. 닫힌 변기 뚜껑을 열자 가득 찬 오물. 그 상황에서도 오물부터 치우느라 스위치를 꾹꾹 눌렀다. 아마 오물을 치우느라 정신을 조금 차린 덕분에 변기에 앉아서도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밖으로 나오자 승무원이 승무원실로 안내했다. 조금 시원한 공간이라서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이미 나는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

승무원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곧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괜찮다는 말을 연거푸 하자 승무원의 얼굴도 환해졌다. 승무원은 설명을 덧붙였다. 승객들이 좁은 의자에 편치 않는 자세로 앉아있어야 하고, 기압이 지상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나보다 승무원이 더 놀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들은 나로 인해 비행기가 회황을 했다면 퇴사하는 상황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 정도 상황이 되려면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쓰러졌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옷에 변을 보았을 거라고 내가 대답했다.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다낭에 도착했다. 우리는 공항 밖으로 나가 우버택시를 불렀다. 아직 환전하기 전이라서 기사에게 줄 요금으로 5달러를 준비했다. 아들은 기사에게 휴대폰의 약도를 내밀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소통은 어렵지 않았다. 내리면서 5달러를 내밀자 기사의 얼굴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미케 비치와 근접해 있었는데 그 부근에 호텔들이 몰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주렁주렁 귤이 매달려 있는 나무가 우리를 맞이했다. 프런트에 여직원이 앉아있었다.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환전에 대해 물어보니 내일 아침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우리는 객실로 들어가서 대형 가방을 놓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앞 도로를 건너자 바닷물이 모래를 쓰다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바람도 약간씩 불고 있었다. 걷는데 마치 초여름 밤처럼 상쾌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계단을 이용해서 해변으로 갔다. 어둠 속이었지만 모래가 흰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도소리를 더 듣고 있다가 인도로 올라왔다.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