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의 창작마당 > 산문모음

소처럼 생겼다해서 우도라 붙였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그 섬을 보자마자 여행 잡지에서 보았던 그럴듯한 내용은 이내 휘발되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숨막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구릉처럼 낮은 민머리 산에 팔월의 뜨거운 햇살만 내리꽂히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라고는 풀과 키를 겨루고 있는 관목뿐이었다. 언뜻 보아서는 민둥산으로 오해하기 딱 알맞았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에 버스가 한 대 있었다. 나는 우선 섬을 둘러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고, 남편은 낚시가 중요했기 때문에 아이스박스를 메고 낚싯대를 하나 들고서 민둥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사라졌다.
   버스가 떠나자 선착장 앞은 아예 텅 비었고, 건물의 그늘에 있던 몇 사람만 눈에 띌 뿐이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나는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중년 남자에게 버스가 또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남편과의 약속 장소인 산호초 해변까지 가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20분 남짓이라면서 남자는 찌푸린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짐수레에 실은 물건들은 상당히 많았다. 밥을 해먹는 도구들, 낚시가방. 텐트, 가족들이 입을 옷가지, 파라솔, 스펀지 위에 비닐천이 덧입혀진 자리, 부피도 많았지만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짐을 아이들 키 높이만큼 실은 수레를 밀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야했다. 게다가 길은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이어지곤 했다.
   내가 밀고 가다 애들에게 수레를 맡기기도 했다. 수레를 밀면서 앞을 쳐다보니 벌판 같은 구릉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아득한 거리처럼 느껴졌다. 쉬고 싶어도 변변한 나무하나 없었기 때문에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고개를 좌로 우로 틀어 앞을 보면서 수레를 밀었다. 민둥산을 태울 것 같던 햇살은 이제 아이들 이마에 꽂히고 있었다.
   가장 절실했던 건 물이었다. 입안의 침까지 말라버린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귀밑까지 흘러내린 땀을 훔치곤 했다. 딱딱하게 얼은 하드 하나씩 애들 입에 물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건물이 없으니 구멍가게도 있을 턱이 없었다. 애들은 인상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 간간이 발생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조차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드디어 건물이 하나씩 다가왔다. 구멍가게가 보이자 애들은 어금니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랄까. 물은 큰 병으로 샀고 애들에게 하드 두 개씩 쥐어주었다. 하드를 핥고 있는 애들의 불덩이 같은 얼굴은 내 마음을 짠하게 했다.
   산호초 해변은 마치 그림 같았다. 바다는 깊이와 맑기를 암녹색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그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해변은 온통 백산호밭이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동글동글한 모래를 한 움큼 쥐어 손바닥을 폈다. 대체 바다와 얼마나 긴 세월을 뒹굴어 이렇게 예쁘고 조그마한 모래가 되었는지, 그게 겁의 세월일까 하는 생각을 하자 삶이 덧없게 느껴졌다.
   해변의 경사가 급해서 계속 애들을 지켜봐야 했다. 애들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지켜보는 내 마음만 불안할 따름이었다. 잠깐 왔던 남편은 수영을 하는가 싶더니 도로 아이스박스를 둘러메고 사라졌다. 멀리 성산포가 보였다. 우도에서 보는 성산포는 더 아름다운 듯 했다. 배로는 꽤 거리가 되는 것 같았는데 그처럼 멀게 보이진 않았다. 성산포 뒤쪽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아름다웠다. 나는 스케치북을 꺼내어 성산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흰 빛깔의 구름은 스케치가 끝나기도 전에 거무스름하게 변했다. 그때부터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발이 굵어지자 파라솔 아래쪽으로 짐을 모으고 자리를 뒤집어썼다.
   성산포 뒤쪽에서 솟아올라온 구름이 우도에 비를 쏟고 가는 건 내가 보기엔 아이러니 했다. 하지만 그건 규칙과도 같았다. 세 번째는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한 비였다. 아무리 불러도 귀머거리 행세를 하던 아이들이 그때서야 슬금슬금 물에서 나왔다. 딴 사람들은 짐을 챙겨 다 떠났지만 남편은 그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세찬 비 때문에 사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걱정으로 바뀌어 초조해졌다. 애들과 자리를 둘러쓰고 남편이 사라진 쪽을 흘깃거렸다.
   한참 후 남편은 여전히 낚싯대를 왼손에 쥐고 아이스박스를 오른쪽 어깨에 멘 채 비를 쫄딱 맞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편을 보자 걱정은 분노로 바뀌었지만 마이동풍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배가 닿는 곳을 물어 수레를 밀고 달렸다. 오는 것과는 달리 길이 질퍽거려 애를 먹었다. 하지만 어느 곳의 선착장에서도 성산포로 가는 배는 없었다. 그 날밤은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듯하다.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았고, 빛을 발하는 별들은 땅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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