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스 스타일즈 호텔의 조식시간은 7시부터 10시 사이이다. 일어나 창을 열자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 길거리 장사치들의 확성기처럼 사람을 불러 모으는 소리인 것 같다. 짐작하건데 놀이기구 따위에서 나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싶다.

  오사카 성에 가야하고, 점심도 먹어야 하고, 간사이공항에 4시까지는 도착해야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을 꾸린 다음 시계를 보니 8시 반이다. 한 시간 정도 부족한 잠은 비행기에서 때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항상 8시간쯤 잔다. 내 취침시간에는 꿈꾸는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다.

  15층에 조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어 승강기에서 내리니 줄이 길다. 줄 서기 전 안쪽을 들여다보니 홀이 상당히 넓다. 다행이 홀에 있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식사를 끝낸다. 십 여분 쯤 지나자 우리에게도 테이블이 배정되었다. 그들이 준 표찰에는 사용 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으며 식사하는 동안 테이블에 놓아두면 된다. 뒤쪽에는 반대의 글자가 표기되어 있으니 나올 때는 뒤집어 놓으면 될 것 같다. 

  접시를 들고 줄을 섰다. 호텔 룸이 좁아서 불평을 했는데 음식을 보자 금방 마음이 풀린다. 뷔페식인데 진수성찬이다. 필리핀의 어느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구운 식빵과 계란 프라이를 먹었던 기억이 있고, 그보다  나은 호텔 조식들도  음식이 몇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우선 맘에 드는 것을 골라 담았다. 대부분 구미가 당기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한 번 더 가져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접시를 깨끗이 비운 다음 다시 줄을 섰다. 뭐든 내 입에 잘 맞지만 특히 소시지가 맛있는 것 같아 또 담았다. 커피머신 앞에서 종업원에게 사용법을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버튼을 눌러준다. 커피를 마시면서 유리창에 가득한 바깥 풍경을 보는데 느낌은 그저 그렇다. 건물에 쓰인 일본어만 아니라면 한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니 열기가 에워싼다. 하지만 한 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구글 앱이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 가면 되니까 큰 걱정은 없다. 하지만 딱 하루만 무제한 데이터를 쓰기로 했으므로 11시 부터는 캡처해둔 앱을 들여다보면서 걸어야 한다.

  시내를 벗어나니 간간이 일본특유의 이층집이 눈에 띈다. 특유라는 표현을 썼지만 십여 년 전 흑산도의 뒷골목에서도 마주쳤던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대도시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일본식 이층 양옥은 개발붐 때문에 거의 다 사라졌다. 걷는 동안 자그마한 일본 신사와 마주치기도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들어 가 사진만 몇 장 찍고 얼른 나왔다.

  가다보니 우리네 재래시장처럼 넓은 골목 위를 뚜껑으로 덮은 곳도 있다. 가게들이 거의 없어서 전통 시장은 아닌 것 같았다. 혹 5일장이 서는 곳이 아닐까 싶지만 궁금증을 묻어둔다. 어차피 우린 영어에 서툴고 마주치는 일본인들 또한 우리와 비슷할 테니 말이다.

  다시 대로변으로 나오자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눈에 띈다. 머리가 덥수룩한 남학생들을 보니 한국의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체구는 조그마한데 선후배 사이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해서 슬며시 웃음이 나려한다. 물론 후배가 선배에게 깍듯하게 구는 장면이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들을 너무 오래 보고 있다 큰일(?) 날 수도 있다.

  오사카 성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아들에게 물어보니 다 왔다고 한다. 중학교를 지나치고 나니 박물관이다. 우선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냉방기가 가동되는 듯 시원하다.  비싼 입장료를 생각한다면 다 돌아야 한다. 입장료는 비싸고 전체 다 관람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그만두기로 했다.  아쉬우니 팸플릿 몇 장을 들고 나왔다. 아들이 보더니 그 중 하나는 파는 거란다.

  돌아서는데 삼십년 전에 읽었던 대망이라는 대하소설이 떠오른다. 32권이나 되는데도 꽤 빨리 읽혔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은 내 머리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대망의 주인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오사카성을 만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엇비슷한 시대의 쇼군들이지만 성향은 좀 다르다. 호전적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니 우리에겐 영원한 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적으로 일본인들에겐 매우 추앙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사카성이 있었다. 오사카성과 주변의 터가 매우 넓어 가까이 가자 시야가 탁 트인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과 담장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가 어울려 참 아름답다. 담장에 쓰인 벽돌 돌은 아담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몇 아름드리의 바위가 끼어 있다. 물론 바위는 판판하게 깎아서 썼다. 1583년 건립을 되었다는데 유실되어 몇 번이나 재건했다고 한다.

  입장료를 받고 있어서 끊었는데 알고 보니 건물 바깥은 입장료 없이 다니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관람한 첫 누각의 겉모양은 이층 기와집이고 속은 광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총을 들고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어디를 향해 총구를 겨눌까하는 고민을 했다. 한때 그들의 적이 우리나라였으므로 마음이 좀 불편했던 것 같다. 두 번째 누각도 널찍한 목조 건물이었고 마지막은 석조건물이었는데 창고 같은 구조였다.

  초입에서 상당히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천수각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중간에 아들이 사온 복숭아맛 물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난 더울 때 갈증을 수반하는 음료 종류는 거의 섭취하지 않는다. 천수각 입구의 자판기에서 물을 뽑아서 마신 후 사람들을 따라서 들어갔다. 사진 촬영을 위해 서 있는데 마당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찌른다.

                                                                         -천수각-

  천수각 앞쪽에 입장료가 쓰여 있었다. 그때서야 우리가 관람했던 누각은 엑스트라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천수각이 포함된 입장료가 거액이어서 우린 세 채의 건물만 관람하는 조건의 입장권을 샀었다. 말하자면 우린 낚인 셈이었다. 천수각의 입장료만 따로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천수각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바람이 잘 통했고 따라서 그늘진 곳은 상당히 시원했다. 많은 관광객들 틈에 앉아 땀을 좀 식혔다.

  천수각은 앞 건물들이 비해 외관이 훨씬 크고 화려하다.  하긴 8층이나 되니 2-3층인 앞의 누각들과 비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겠지만.  하지만 천수각은 목조가 아닌 석조로 재건을 했다하니 역사적인 값어치는 반감 되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의 포도를 보면서 ‘저건 틀림없이 맛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여우처럼 비슷한 생각을 하며 내려오기는 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후문으로 나와 한참 걷다보니 대판성공원역. 지하철을 타고 난바역에서 내려 도톤보리로 갈 예정이었다. 점심에 라멘을 먹을까하다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초밥으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도톤보리 중심가에 있는 맛집 대기수산으로 갔다. 점심시간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밖에 대기 중인 사람이 다섯 명 정도 되었고 두 팀이었다. 나오는 사람들은 많았기 때문에 금방 들어 갈 줄 알았는데 테이블을 치우는 중인지 좀 더뎠다. 우리는 15분쯤 대기하다 들어갔다.

  초밥 앞에 가격표가 붙어있는데 어제와는 달리 꽤 비쌌다. 100엔짜리는 드물고 보통 200엔이다. 오늘은 내가 돈을 내기로 했으므로 좀 부담이 되어 나는 천천히 먹었다. 아침을 제대로 먹었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먹고 나서 세어보니 접시가 15개이다. 먹고 나서 얼른 일어섰다.

  시간은 넉넉한 편이지만 나는 서두른다. 만약에 뛰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수도 있고, 심하게 비약한다면 통닭구이가 될 수도 있다. 8월 말이 가까워 오지만 오사카의 더위는 기세가 등등하니 말이다.  

  남바역은 환승역이라 내겐 미로이지만 아들은 익숙하게 간다. 혹시 실수할까싶어 길이 맞느냐고 물으니 걱정하지마라고 한다. 중간에 승무원이 가르쳐준 대로 플랫폼에 내려가서 지하철을 탔는데 공항 가는 지하철이 아니란다. 나이든 그분은 친절하게도 지하철에서 나와 철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간사이행은 우리가 타고나서 곧 출발했다. 공항으로 들어가서 수속을 밟는데 아들이 놀라는 시늉을 한다. 우리가 산 곤약젤리 때문이다. 먹을 만하고 가격대비 싸서 다섯 봉지를 샀는데 그건 화물칸에 실어야 한단다. 할 수 없이 내 배낭에 넣어서 화물로 부쳤다. 솔직히 배낭을 벗어버리니 몸이 날아 갈 것 같다.

  면세점에서 초콜릿을 산 후 대기실로 왔다. 둘러보니 젊은이들뿐이다. 탑승을 하고 보니 우리는 맨 꼴지 좌석. 창가에 앉았는데 젊은 남자가 오더니 자기 자리라고 한다. 그 자리는 천장이 낮아서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몸도 끼던 그 의자에 청년이 앉자 걱정스러워 돌아봤다. 그 청년은 키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몸을 구겨 넣다시피 했다. 이륙 때 경직되어 있던 청년의 표정이 차츰 풀리는 걸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객기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 짐을 찾은 다음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갔다. 승용차를 타고 아들집으로 돌아오니 좋긴 하다. 다음날 아침,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퉁퉁 불은 얼굴에 짜부라진 눈, 마치 호박덩이를 보는 것 같다.  아들의 얼굴은 거의 변화가 없어서 내 나이를 절감할 수밖에.

  다소 밋밋했던 여행. 난 오사카 여행을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하긴 하루 반 정도의 시간으로 무얼 더 기대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