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역에 도착했을 때는 한시쯤. 도착해보니 출발 이십오 분 전이다. 역내보다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장소에서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우리네와는 달리 그 부분의 공간이 넓고, 그곳에 다양한 의자들이 마련되어있다. 게다 지붕이 그 공간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그리 덥지가 않다.

한참 앉아있으니 핏사눌록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우리도 긴가민가하면서 그들을 뒤따랐다. 의심증이 많은 나는 딸에게 역무원과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플랫폼의 수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느라 역무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던 상황이었다. 플랫폼으로 기적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기차는 3등 열차. 우리네 기차로 말할 것 같으면 비둘기호란다.

우리는 2등석을 끊었는데 우리가 탈 기차에는 일등석과 이등석밖에 없단다. 그 기차는 공교롭게도 연착 중이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태국의 열차는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렵고 중간에 연착하는 일도 잦다한다.

한참 후 다시 방송이 흘러나왔고 우리가 탈 우등열차가 들어왔다.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은 나와 딸 그리고 세 사람 뿐이었다. 태국에서는 일이등석이 매우 큰돈인 듯싶었다. 기차의 객실도 세 칸뿐이었다. 우리는 좌석을 찾아서 앉았다. 여승무원이 도시락을 가져다주어서 먹을까하는 참인데 남자 직원이 와서 뭐라고 한다. 태국어라 알아듣지 못해서 표를 보여줬는데 우리더러 따라오라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의 좌석은 이등실 34번 35번이었고, 그 칸은 일등실이었다.

도시락을 반납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등실도 일등실과 똑같은 밥이 지급된단다. 우린 점심을 먹고 왔기 때문에 밥과 고등어조림, 볶음닭고기는 배낭에 집어넣었다. 밀폐된 그릇이라 염려할 것은 없었다. 대신 여분으로 지급된 빵과 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바깥 풍경이 버스를 탈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논바닥이나 주변에 무리지어 있던 새떼가 기차의 바퀴소리에 놀라 멀리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논두렁에 종렬로 서 있는 야자수와 풀이 가득한 늪지대. 가시박의 덩굴이 나무를 뒤덮고 있는 게 종종 눈에 띈다. 우리나라의 들이나 산에 엄청 피해를 끼치는 풀이라서 보면서도 기분이 좋지않다.  

경치를 느긋하게 바라보지만 마음까지 한가한 건 아니다. 핏사눌록에서 수코타이까지 버스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기차는 역이 아닌 곳에서 멈춰서기도 한다. 중간에 기차가 한 시간 이상을 멈춰버리는 바람에 잔뜩 열을 받기도 했다. 6시10분이 마지막 버스라는데 수코타이까지 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였다. 우리가 역에서 하차할 때의 시간은 6시. 하필 퇴근시간과 겹쳐있다.

뚝뚝을 잡아타니 기사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는다. 어차피 말이 통할 리도 없어 더 묻지도 않았다. 젊은 여기사의 옆자리엔 6살쯤 되는 사내아이도 있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말았다. 버스터미널 주변에 숙소를 얻어야할지도 모르고 또 수코타이에 다음날 들어가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 그저 초조할 뿐이었다.

뚝뚝은 차 사이사이를 곡예라도 하듯 달렸다. 터미널 앞에 도착하니 6시 15분. 태국은 버스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수코타이라고 쓰여 있는 창구로 가니 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안쪽의 창구로 가보라고 했다. 그 말에 뛰다시피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도 거기에서 표를 끊어준다. 8시이니 한 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하지만 다행이다. 기차가 제 시간에 오지 않으니 배려차원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배려차원이라면 그 정도의 간격은 아닐 것 같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니 불만스러운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부조리한 인간인 것 같다.

조금 후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탔을 것 같은 백인관광객 두 쌍도 우리처럼 그 창구에서 표를 끊었다. 얼마나 불안에 시달렸던지 핏사눌록 플랫폼에서도 그 사람들을 보지 못했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핏사눌록의 역을 가장 먼저 빠져 나왔을 수도 있겠다싶었다.

저녁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우리는 핏사눌록터미널을 다시 빠져 나갔다. 6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터미널 바깥은 어둡고 조용했다. 멀리 갈 수도 없어서 주변의 상가에서 음식점을 찾았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이 닫혀 있었고 음식점과 술집만 불이 켜져 있었다.

한참 걷는데 청사초롱이 눈에 띄고 한복을 입은 남녀가 서 있다. 가까이 가서보니 한복을 입는 남녀는 나무판으로 만든 광고물이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분명 음식점인데 청사초롱과 한복 입은 남녀의 광고물이 유흥업소를 방불케 한다. 테이블에는 한 팀, 손님이 두 사람뿐이다. 그들이 먹는 떡볶이가 맛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한국음식점이 처음이라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음식점에 종사하는 사람은 세 사람이나 되는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물어보니 보스는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한다. 시디신 김치로 만들어 준 김치찌개지만 맛있게 먹었다. 너무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다보니 감각이 둔해진 것 같다. 아직 시간은 넉넉했지만 밥을 먹자마자 일어섰다.

골목에는  행인은 거의 없고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 몇명만 눈에 뜨였다. 여자들의 뒤쪽으로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가게가 있었는데 커튼의 빛깔이 빨간 이유는 가게의 불빛 때문이었다. 주변의 불 꺼진 가게보다 그 가게가 더 두렵게 느껴져서 앞을 빨리 지나쳤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핏사눌록터미널의 의자에 앉아있는데 딸이 모기가 문다면서 일어났다. 지나치게 짧은 바지가 원인 인 것 같았다. 그런데다 모기들은 늘 딸의 피를 더 선호(?)했기 때문에 차가 올 때까지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딸은 몸을 계속 움직였지만 가끔씩 물리는지 손으로 살갗을 문지르곤 했다. 나는 모기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하자 어디선가 우르르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터미널의 직원들은 학생들을 제지하더니 관광객들을 먼저 태웠다. 아마 관광객들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았다. 짐칸에 짐을 밀어 넣은 후 들어갔던 나는 남은 한자리를 발견했고 통로 맨 끝까지 들어갔다. 화장실 옆자리였는데 거기에는 주황색 천을 두른 젊은 스님이 앉아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비위생적인 느낌은 없었다.

스님은 내가 앉자마자 앞자리에 대고 무어라고 말했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딸의 옆자리 남자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는데 자리를 바꿔주겠단 뜻이 아닌가 싶었다. 딸은 건너 건너의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딸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태국남자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고, 딸도 돌아보지 않아서 스님의 뜻은 관철되지 않았다.

스님은 눈썹을 면도날로 밀어버렸는지 약간 무서운 표정의 얼굴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스님을 훔쳐보곤 했다. 실내가 매우 어두워서 나는 다소 과장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내 앞자리의 백인 커플들이 가끔씩 킥킥 거리는 것 말고는 소음이 거의 없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두리번거렸는데 스님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대충 들어보니 스님도 수코타이에 가는 중이었다.

차가 두어 번 멈춰서 손님 몇 사람이 내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따라 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내리는 곳에서 하차를 해야 맞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의심스러워서 스님에게 넥스트 수코타이? 라고 물었다. 스님은 음 수코타이...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황을 보건데 서로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형국이었다. 어차피 스님도 수코타이를 가는 중이니 따라 내리면 되겠다싶긴 했다.

거의 열시쯤 수코타이의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뚝뚝만 몇 대 보이고 인적이 드물었다. 뚝뚝의 젊은 남자가 150밧이라고 부르는데 100밧으로 깎았다. 나중에 보니 숙소와 터미널이 매우 가까웠는데 모르고 탄 셈이었다. 기사가 먼 길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눈치를 채지도 못했다.

어두컴컴한 주차장에 내려서 둘러보니 숙소인 블루하우스가 가깝게 보였다. 몇 걸음 걸어가니 화단에 있던 양들이 반긴다. 숙소는 매우 조용하다. 프런트의 아주머니에게 주변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분도 아유타야의 굿모닝숙소 아주머니처럼 소곤거리는 목소리이다. 우리가 묵을 방엔 킹사이즈의 침대가 있었고 자주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