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지금 피지에 있다. 내게 전화를 자주하는 편이다. 전화보다 메일이 낫고 메일보다 편지가 나은데 편지는 오래 걸린다. 또한 편지는 우체국에 가서 부쳐야한다. 귀차니즘에 빠져있는 나는 메일을 쓰고 딸은 전화를 자주 한다. 물론 전화가 좋지 않다는 건 통화료가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일분 당 천원이니 통화를 하면서 전화기에 찍히는 숫자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숫자는 초바늘처럼 움직인다. 디지털 시대니 통상적으로 쓰는 전화기라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가 외국에 나가있으면 더욱 유용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 전화기가 없다면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아 든 순간 쓰러질 수도 있다. 쓰러진 후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 작은 외상 정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뇌출혈 같은 비극적인 상황까지도 예감을 해야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추측이다.

  맨 처음 딸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 난 코끝이 찡했다. 딸이 피지에 첫발을 디딘 날 밤에 울었다는 말 때문이었다. 외로웠단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거라 얘기 해줬고 그건 정답이었다. 시간은 늑장을 부리는 법이 없다. 딸이 피지에 도착한지 벌써 한달 하고도 일곱 밤이 지났다. 이젠 딸이 전화를 하는 이유는 수다를 떨고 싶어서이다.

  딸은 일주일마다 한번씩 작은 섬으로 여행을 간다. 거의 일박 이일이다. 딸의 말을 빌리자면 섬은 파라다이스란다. 얼마 전부터는 오리발과 스노클 그리고 물안경까지 사용해서 바다 속 구경을 나섰다. 장비의 특성상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바다 속이 깨끗해서 또 다른 파라다이스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

  며칠 전 딸은 영국여왕의 생일날까지 포함한 이박 삼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영국여왕의 생일을 국경일로 챙긴다면 피지는 영국령인가보다. 아무튼 학원생들이 단체여행을 했다는데 에피소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딸은 빠짐없이 얘기했다.

  딸은 또래 보다는 나이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물론 스터디 그룹의 대다수가 딸보다 나이가 많다. 삼십대 기혼자들도 있고 오십대도 있다한다. 그들 중 대만인이 딱 한 사람인데 나이는 삼십대 중반이고 주부라 한다. 딸은 그 여인과 친한 사이이다. 아이가 없는 그 여인은 중국 본토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고, 피지는 다섯 달 코스로 어학연수를 왔다한다. 그 여인도 여인이지만 남편 또한 대단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그 여인을 챙겨주던  일본인 기혼남이 있었는데 그 남자가 망발을 한 것이다. 그 여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함께 자자’라는 말을 했다한다. 물론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던 그 여인은 상처를 받았다며 딸에게 얘기를 했다. 딸은 일본인 기혼남을 내게 들먹이면서 욕을 했다. 지금 생각에도 내 대꾸가 웃긴다.

  “야...별 것도 아니네.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좋아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거야. 어차피 둘 다 기혼이잖아.”

  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렇게 말을 했을까?  아무래도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지니 점점 망령이 들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