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건물-

  

      

주변에서 음악회를 하고 있어 잠깐 구경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둘 노래를 하는 사람 하나인데 관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조금 민망해 보이는 광경이지만 그들의 노래 솜씨나 연주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흥분되고 긴장이 된다. 한곡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그렇지만 여정 중이니 노래를 더 들을 수는 없었다.

중간 중간 빌딩의 뒷면에 그려진 낙서 같은 그림도 낙서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길거리 화가들도 길거리 음악가들처럼 솜씨가 출중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아니 그들도 일생을 그림에 빠져 사는 그런 사람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일류와 2류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고 도심을 우범지대처럼 보이게도 하니 폐단도 있는 것 같다. 가끔 나는 작은 터널을 지나면서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종종 걸음을 친 적이 있다. 초저녁부터 어두컴컴해 지는, 인적이 드문 통로의 벽에 괴팍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심리가 궁금하다.

주변 건물들을 둘러보다가 클럽을 하나 발견했다. 그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단번에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자라고 부르기 민망한 그녀. 그녀는 그 가게의 간판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게이들이 즐겨 찾는 술집인가 보다. 가게 안이 어두컴컴해서 좀 아쉽다. 지금이 밤이라면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나야 들어 갈 권리는 없겠지만 불빛에 의존해서 안을 엿볼 수도 있을 테니까. 속눈썹을 길게 붙인 그 여자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잠시 쉬기 위해서 들른 곳은 쇼핑센터인데 실내에 분수대가 있다. 주렁주렁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설치 미술작품이 이채롭다. 중앙에 분수가 높다랗게 솟았다가 점점 줄어들곤 하는데 불빛이 여러 색으로 바뀌어서 한참동안 앉아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마련된 자리가 참 많은데 비워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엉덩이를 들이밀곤 한다. 관광객들이 빈번하게 들락거리는 것 같다.

몬트리올에서는 추위 때문에 만들어진 지하도시가 있다. 언더그라운드시티라고 불리는 데 길이가 32킬로미터쯤 된다한다. 1600여개의 쇼핑몰과 상점들이 있는데 면적이 여의도의 1.5배쯤 된다하니 추울 때는 관광객이 엄청 많을 것 같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갔던 분수대가 있는 쇼핑몰도 그곳의 일부분이었다. 

그곳에서 나오니 어스름이 깃들고 있다. 구 시가지의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앞으로는 강이 펼쳐져있다. 강 건너에서 익숙한 건물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Habitat67이라는 이름의 건물인데 몬트리올에서 엑스포가 열리는 기념으로 1967년에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 한다. 레고로 만든 조립품 같은 느낌인데 사람과 세상을 모티브로 했다하니 환경 친화적인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구시가지에서 보자면 강 건너라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뒷길은 몬트리올 도심과 연결되어있다고 한다.

 강을 따라 오다가 특별한 배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모양을 보니 중세시대 의 배 같은데 언제 만들어진 걸까 궁금하다. 요즘 들여다보니 그림 같은 느낌의 사진이다. 그 부근에 호화요트도 즐비하다. 그 뒤쪽의 놀이기구 대 관람차의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하늘이 심상찮다. 그러고 보니 먹구름 때문에 빨리 어두워 지나보다.

하늘을 보다보니 뭔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하늘에 걸린 줄 위를 아이들이 걷고 있다. 마치 서커스의 한 장면 같아 오금이 저려온다. 나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이 생기는데 아이들은 어떨까싶다. 마지막 코스는 지프라인. 아이들은 지프라인을 타고 허공을 힘차게 가로질러야 한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지프라인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걸 보고야 말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지프라인을 타게 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 아버지에게 비정한 놈이라는 욕을 했다. 결국 아이는 지프라인을 타지 못하고 내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순서는 불꽃놀이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지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다리를 건너가야 더 가깝게 볼 수 있는데 다들 그만 가자고 한다. 하긴 다리를 건너가면 다시 건너올 때까지 한 시간이 아니라 두세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싶다. 축포소리가 상당히 멀리서 들리지만 불꽃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퍼져갈 때 사람들은 환호한다. 삼십분 쯤 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저녁도 먹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세워둔 차를 잘 찾을까 걱정이 앞선다. 겨우 차를 찾아서 탔고 몬트리올의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