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을 종종 다닌다.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슈퍼에 다녀온다거나 아니면 읍내의 야산에 간다. 서울 근교의 산과는 달리 이곳의 산에는 사람이 귀하다.

그날 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구름 때문에 하늘이 낮아져 있었다. 물론 구름의 양이나 빛깔로 봐서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는 아니었다.

  두리봉이란 이름을 가진 그 산은 학교 뒤에 있다. 산길은 학교 뒷마당과 녹슨 철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산길을 쳐다보면,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에서처럼 다른 세상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길로 들어서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는 금방 잊게 된다. 그곳은 습한 공기와  소나무 향내가 뒤섞여 호흡기로 스며드는  전형적인 숲길일 뿐이니까.

  오늘 나는 그 길에 들면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잠깐 떠올렸는데 곧 이어 엉뚱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귀신에 대한 생각이었다. 통상 귀신이란 흐린 날에 출몰하며 호젓한 곳에서 만나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그 순간부터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나 혼자 걷고 있었지만 마치 발이 4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혼란스럽게 느껴지고 갈잎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확대되어 귀청을 울렸다. 귀신을 만나 본 사람치고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까지 귀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다 보니 뒤돌아설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런 기분으로 20분쯤  오르막길이라고 갖다 붙이기도 어중간한 비탈길을 가는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난다. 쳐다보니 두 사람이 내려오는 중이다. 여자들이지만 무척 반가웠다. 큰 소리를 내어 인사를 했다.

  간혹 회색빛 토끼가 길을 따라 마주 오기도 하는  오솔길인데, 오늘은 순전히 날씨 때문에 뒷목덜미에 송곳을 얹고 가는 것처럼 편치 않았던 것이다. 정상에 못 미쳐 늘 쉬는 바위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데 따그닥 거리는 소리가 난다. 소나무 가지 끝을 보니 거의 움직임이 없다. 나는 다시 귀를 기울인다. 딸각딸각 따그닥 따그닥... 일어나서 나는 사방을 휘둘러본다. 그러면 그렇지...청설모이다. 겨울밤 살강의 그릇을 뒤지고 다니던 쥐와는 달리 그 녀석은 내 얼굴에 웃음기를 돌게 한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더 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오면서 나는 산을 꼼꼼히 뒤진다. 노란 산국, 알알이 빨갛게 익은 맹감 열매, 빨간  색종이처럼 고운 개옻나무 잎, 노르스름한 도토리나무 잎, 한 무더기의 억새꽃... 가을의 끝자락이라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서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