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깎는 소리에 깬다. 헬기소리로 착각도 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이웃집에서 돌아가는 잔디 깎는 기계음이다. 몹시 더운 날이 아니라면 늘 주변에서 잔디 깎는 소리가 들린다. 집주인들이 직접 잔디를 깎기도 하지만, 용역회사에서 온 잡부들이 잔디를 깎거나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인부를 보기도 하는데 건장한 상체까지 드러내고 있으면 마주보기가 민망하다. 어깨나 뒷목주변에서 문신이라도 발견하면 아예 나는 그들을 못 본 척한다.

  낡은 집이건 새집이건 거의 화단은 정돈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외출 할 때 옷 입는 것에 공을　들이는 편인데 캐나다인들은 정원을 가꾸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생 제롬은８만 인구가 사는 소도시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대형마트도 많고 종합병원까지 있으니 말이다. 딸의 출산을 돕기 위해 왔기 때문에 병원과 집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궁금해 병원까지 걸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이 병원은　걸어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맨 처음엔 인터넷으로 검색한 다음 구글앱을 따라 걸어 병원에 갔지만 그 다음부터는 앱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병원까지 갈 때 산책로를 이용하면 되었고 이미 나는 그 길을 컴퓨터의 지도를 통해 알아 둔 상태였다. 딸이 얘기하기를 걷기운동을 하는데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병원과 집의 중간쯤에서 산책로가 끊기고 그 부근에 생 제롬역이 있다.  보도블럭이 깔려 끊긴듯 보이지만 산책로는 몬트리올까지 연결되어 있다한다.  너른 광장을 끼고 있는 생 제롬 역은 공원과 맞닿아있어 사람들로 붐빈다. 몬트리올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인데 생 제롬이 시발역이란다. 우리가 갔을 때는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러시아워 시간이면 몬트리올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주차장이나 마찬가지이니 기차를 이용하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생 제롬　역 안쪽에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눈에 뜨였고 승객처럼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젊은 동양인 몇이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 중 피부가 검은 젊은남자가 우리에게　중국어로 인사를 했고 딸이 반응을 하지 않자 다시 베트남어로 인사를 했다. 딸은 남자를 등지고 서면서 입을 비쭉거렸다.

  역에서 나와 천천히 걷는데 벽화가 그려진 건물이 보였다. 극장 앞이기도 했는데 광장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눈에 띄는 그라피티아트에 비해 꼼꼼하게 색이 칠해 있어 벽화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명확히 구분이 가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이곳저곳에 휘갈겨 쓴 글자처럼 그려진 지저분한 그림과 데생을 한 다음 꼼꼼하게 색칠하는 그림은 분명 차이가 커 보인다.

  돌아다녀보니 역 주변이 세인트 제롬의 중심가인 것 같았다. 가끔씩 페스티발이 열린다고도 하는데 한 번도 보진 못했다. 종탑 때문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은색의 성당이 있었는데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근처의 상설시장에서는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어 이것저것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포기상추, 딸기, 오이, 호박, 브로콜리 컬리 플라워 토마토 따위를 각 그릇에 담아 3불 4불에 팔았다. 가끔은 싱싱한 채소 3가지에 5불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 매겨져 있어서 과하게 살 때도 있었다. 판매자들 대부분은 얼굴은 구릿빛이었고 손은 거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