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에 나는 글에 대한 매력에 빠져 있었다. 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고 간혹 사무실 여직원들과도 전화가 아닌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 때문에 남자들이 호기심을 갖기도 했다.  그 사무처에 근무하는 남자들은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큰 내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기를 통해서  대화를 하는 남자가 생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공기관이었던 그 사무처는 종로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역 부근에는 분소가 하나 마련되어 있었는데 근로자들의 직업 소개를 담당하는 과였다. 어느 날 거기에 새로 왔다는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약간 비음이 섞인 목소리. 처음 들었던 그의 목소리는 그저 그랬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쯤 연하였을 것이다. 그는 언어 구사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특히 문학적인 부분에서는 나와 통했다. 시인 김수영을 좋아한 탓에 적당히 어두운 면을 갖고 있는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편지에 삽화도 그려 넣곤 했다. 아마 내가 훨씬 편지를 자주 썼을 것이다. 그는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내게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시에 관심이 많았고 장래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쌍둥이였는데 삶에 의문이 많아 면도칼로 두 번이나 팔뚝을 그었다는 말을 했다. 내게도 늘 죽음이라는 게 과제였지만 나는 그렇게 멋진(?) 행동은 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가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지만 내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성적인 내 체형에 상당히 실망을 한 것 같았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를 아예 잊고 있었다. 그러다 강남으로 옮겨간 그 사무실에 들를 일이 있었었다. 내가 사십 대 초반쯤이었을 거다.  그때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장난 끼가 발동한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소설을 시작했고 습작품이 스물 너덧 편 정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를 좋아만 했지 쓰지 못했다고 변명하듯 말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연애를 무지 많이 했다한다. 하긴 그의 말은 시어에 가까우니 여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당시 태백 사무소에 근무하던 그는 내게 태백에 놀러 오라고 했다. 아내는 안동에 있고 자신은 사무실 위층에서 기거한다며... 그러마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그를 만난다면 묻고 싶다. 팔목에 땅가시처럼 붙어있는 흉터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