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제대로 친해질 시간도 없이 나는 개와 지내야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돈댁에 도착한 다음날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 하필 그 장면이 잘 보이는 창가에 개의 둥근 방석이 있었다. 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개는 번개가 하늘을 가르면서 쩌억하는 소리가 나자 벌떡 일어났다. 이어 한동안 이어지던 천둥소리에 개는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그 개를 보면서 시커먼 불도그가 이를 드러내며 내게 달려드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식탁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갑자기 개가 내게로 뛰어 온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 머리를 굴리다보니 방법이 있었다. 개는 먹이를 주는 사람을 따르는 습성이 있으니 밥을 주면 내게 관대해질 거란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개는 사료를 먹은 후 조용해졌고 얼마 후에 비도 완전히 그쳐서 나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퇴근해서 들어 온 바깥사돈에게 그 말을 해야만 했다. 바깥사돈이 개에게 밥을 주기 전, 손짓발짓으로 적은 양의 사료를 주었다는 말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에는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하늘이 말짱했다. 나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바깥사돈이 당시 나를 바보처럼 여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라는 말을 우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으니 말이다.

사돈댁 개에 관한 이야기는 더 있다. 아니 개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다. 사돈은 출근하면서 내게, 한두 번 정도 개를 바깥에 내어 놓으라는 말을 했다. 바깥에서 볼일을 보게 하란 말인 것 같았다. 사돈댁에는 고양이도 한 마리가 있었다. 그놈은 작은 틈을 이용해서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을 때면 나가는 자유로운 몸을 가진 동물이었다.

사돈댁은 지하층이 있어서 마당에 비해 거실이 좀 높다. 현관문에서 열 계단 이상 올라와야 하는 구조이다. 맨 아래쪽 계단 옆의 벽에 자그마한 종이 매달려 있는데 그게 개를 위해 만든 거란다. 사돈댁은 개가 밖에 나가고 싶을 때면 종이 울리니 잘 듣고 있다가 문을 열어주라는 당부를 했다. 현관문은 아래에 있고 식탁은 거실의 안쪽에 있기 때문에 매달린 종이 보이진 않는다. 나는 거의 식탁 앞에 앉아있기 때문에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중간에 개를 잠깐 밖에 풀어주었다가 데려오기도 했다.

유월 말인데도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에 털이 짧은 그 개는 방석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줄곧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종소리가 나서 고개를 드니 개가 방석 위에 있어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들었나싶어서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또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제법 컸다. 기분이 묘해서 계단 쪽으로 다가가니 현관문 앞에 고양이가 엉거주춤하니 앉아있는 게 아닌가.

퇴근해서 돌아온 바깥사돈에게 물어보니 문을 빨리 열어주지 않아서 고양이가 신경질 났을 거란다. 애초에 개에게만 종을 치는 법을 가르쳤는데 고양이가 어깨너머로 배워 가끔씩 문을 열어달라고 한단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어느 날 아침 거실과 연결된 방의 소파에서 자는 고양이를 발견하고서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 놈은 곧 눈을 뜨더니 짜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머리라도 쓰다듬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아서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놈은 내 시선을 외면하더니 곧 방을 나가 버렸다.

사돈댁의 그 개는 먹이를 준 이후부터, 냄새나는 침을 내 손과 옷에 발라대기도 했지만, 꾀죄죄한  빛깔의  그 고양이는, 어쩌다 마주치는 데도 눈길조자 주지 않는 매정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