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의 창작마당 > 산문모음 > 어느 아줌마의 하루

딸도 아들도 학교에 갔다. 어제부터 온 집안이 어질러져 있었는데 이젠 그애들의 잠옷까지 가세해 있다.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을 돌아보면서 청소기를 돌리려다가 그만둔다. 집안이 치워지질 않았으니 청소기가 지나갈 틈도 없다. 그런거야 천천히 해도 되지 뭐 하는 생각을 하면서 티비를 켠다. 아침드라마를 보려다 시간이 많지않다는 생각에 홈쇼핑 채널로 돌린다.
공기 정화기, 전자파가 차단되는 옥장판, 피부가 재생되는 화장품, 기능성 속옷...그리고 다양한 전자제품들...공기 정화기가 지난번 것보다는 성능이 좋아보인다. 유혹을 떨치려고 채널을 돌린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앞 대머리 부분이 번쩍 거리는 그는 서울 대형 교회의 목사이다. 다소 수다스러운 목사의 설교는 기적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수많은 암환자가 나았다는 얘기이다. 주여 아멘...하는 소리가 권사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 나온다. 권사의 가슴은 벌렁거린다. 그 상황을 깨는 건 벨소리이다.
"김권사님? 빨리 나와야겠는데..."
그 생각은 했었다. 초파일에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 XX읍에 가서 돼지고기와 수입쇠고기를 사와야한다. 그읍에는 옛날에 함께 교회에 다니던 박권사의 정육점이 있다. 광역시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정육점은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박권사를 만나면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에 행복해진다. 어느 정육점에 종사하는 사람이 내게 그렇게 해줄 것인가. 까짓거 자가용으로 한시간 거리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다.
김권사는 승용차 문을 닫자마자 기독교 테잎을 튼다. 또다른 목회자의 설교가 흘러 나온다. 권사가 뱉어내는 아멘이 마치 후렴같다.
아무래도 일이 빨리 끝나진 않는다. 하지만 아들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대기해야한다. 중학 이학년 짜리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 끝나서 학원에 가지않고 어디로 샐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다. 집에 아들이 들어 올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해야겠다.
벨이 울리니까 아들이 전화를 받는다.
"우쒸 반찬 없어서 밥 못먹잖아."
아들의 말투는 공격적이다.
"아..라면 먹어. 낼은 저녁에 맛있는 것 해줄께."
"해주긴 뭘해줘. 저녁 밥 할 시간에 들오기나 하면 다행이지."
"오늘은 야유회 준비 때문에 그래."
"일주일 내내 집에 붙어 있어본 적이 있어?"
"이 자식이 엄마한테..."
권사가 언성을 높이자 아들이 수화기를 패대기친다. 집에 가기만 해봐라...권사는 중얼거리지만 오늘은 10시 안으로 집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이다.
저녁 9시 반 학원으로 전화를 하니 아들이 9시쯤 집에 들어갔다한다. 집으로 전화를 하자 딸이 받는다. 아들은 아직 안 들어 왔다는 대답이다. 분명 딴 길로 샌거 같다. 농사일 도우러 시골 시댁으로 퇴근을 하는 남편이 원망스럽다.속으로 기도를 한다. 어디 이상한데로 가지 말게 해달라고...
아들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까 잠깐 있다 아들이 들어갈 거라 한다. 밖에서 일은 끝나지 않았지만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 온다. 아무래도 아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친구네 집이 가까워 걸어서 가보았지만 아들은 그집에 없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다시 집으로 와서 차를 끌고 나간다.
피시방 두어군데 찾아봤지만 없다. 돌아다니다 아들의 딴 친구를 만났다. 벌써 열두시가 넘었다. 그 아이는 아들이 폭죽을 터트리러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근처의 학교를 헤맸다. 아들을 찾아 데리고 들어오니 한시가 넘었다.
부랴부랴 씻고 30분 동안 저녁 기도를 한다. 시계를 맞춰 놓고 잠이 들었을까 말까하는데 벨이 울린다. 새벽 4시다. 피곤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도 새벽기도를 가야만한다. 권사는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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