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모음
|
|
|
|
|
:: 혼자만의 여행
묵호항은 이미 어둠에 젖어 있었습니다.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아줌마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도마를 씻고 광주리를 헹구고 있었습니다. 어느 아주머니는 아직 미련이 있어서인지 주춤거리고 있었구요. 그 아주머니 앞 고무 다라에는 숭어와 방어가 유유자적이고 있더군요. 말이 유유자적이지 아직 꿈틀대는 채 칼질 당하는 제 동료가 보이는데 유유자적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꿈꾸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이 맞겠지요.
배들이 물살에 삐끄덕 거리는 소리를 듣다 시내로 향했 습니다.
채팅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피시방을 찾았습니다. 아마 그만큼 더러운 피시방도 없을 것입니다. 장사를 시작한 이래 화장실 청소는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았습니다. 흰색의 변기는 회색이더군요. 더부룩한 주인을 보면서 나는 내 소설 속의 어느 캐릭터를 떠올렸습니다.
그날 밤에 삼척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묵호에 대해서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묵호의 밤바다가 아름다워 자주 오긴 했지만 그날만은 딴 곳으로 발을 돌리고 싶었습 니다. 그때 멀지 않은 삼척 항을 떠올린 것입니다.
포구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아침 일찍 뱃고동 소리가 났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시끄러웠습니다. 커튼사이로 얼굴을 내밀어보니 동녘하늘이 막 발간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고 밤새 잡아온 고기를 퍼내고 있었습니다. 그걸 한참 바라보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느지감치 일어나 포구 어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싱싱한 물것들 이 퍼덕거리는 걸 잠깐 보다 해변을 산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안을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귀와 코로 스며 들어 내 가슴을 채우는 것은 파도 소리와 국화 향내였습니 다.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내내 그 아름다움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늘의 차가움과 햇빛의 따끈함을 느껴보려 그늘과 햇빛 속을 번갈아 가며 걸었습 니다. 간혹 바다의 바위 위에 선 강태공을 보기도 했습니다. 주막에서 쉬어 가는 나그네처럼 그들도 고기를 잡는 시늉만 하며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가다 문득 선 곳은 어느 마을 앞이었 습니다. 그곳에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갈림길 앞에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조릿대를 바라보았습니다. 가는 몸과 자잘 한 이파리들이 가을바람을 이기지 못해 내는 소리가 멀리서 도 들렸습니다. 옥상에 널려있는 오징어는 얼마 있지 않아 술안주가 되겠지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떠나지 않을 사람 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프로스트처럼 나도 가보 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는 탓이겠지요.
|
|
김은숙 2006-06-26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