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의 딱빌라란 선착장에서 짐을 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오후 4시쯤이었다. 필리핀 남자가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한글로 적힌 딸의 이름을 보면서 웃었다. 키가 작고 몸이 가냘픈 그 남자는 여행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픽업은 숙소에 딸린 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승합택시 기사가 하는 경우도 있고 앞에서처럼 여행사에서 대신해주기도 한다. 물론 요금은 여행자 부담이다.

우리가 탄 승용차는 한 시간쯤 팡글라오 아일랜드를 가로질러 갔다. 가는 도중 해가 저버려서 어둔 숲길을 달려가야만 했다. 빛이라고는 가끔씩 나타나는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뿐이라서 어둡고 답답한 길이었다.

숙소인 체리스 홈 앞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몸이 무척 왜소한 한국 아가씨였다. 체리스 홈은 네이버 카페를 통해서 예약을 했기 때문에 한국 아가씨와의 대면이 나름 이해가 되었다. 체리스 홈은 스웨덴 사람이 주인이라 한다.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두 개의 침대에 한 개의 매트리스를 바닥에 놓았는데 방이 비좁아서 약간 불편했다. 아이를 기르면서 함께 일을 하는 부부가 있었고 정문 곁에 있는 프론트 데스크 겸 경비실에서는 경비가 상주하고 있었다. 경비원은 밤이면 출입문을 잠갔다. 그 외에도 젊은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다 필리핀인이었다.

다음날 육상투어를 하기로 여행사의 아가씨와 계약을 했다. 3인 투어 비용은 4,000페소였다. 아가씨가 돌아가고 해변으로 가는데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을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길가에는 바와 꼬치집, 슈퍼, 과일가게 등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어두컴컴했다.

팡글라오 아일랜드 해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레스토랑 앞 좌판에는 해산물과 육류가 놓여 있었는데 얼음에 싸여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재료를 고르면 굽거나 튀겨서 손님의 테이블에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필리핀에서 유명한 생선인 다금바리를 골랐고 새우와, 오징어, 돼지고기도 주문해서 구워달라고 했다. 음식이 나오는데 워낙 시간이 걸려서 중간에 산 미구엘이라는 필리핀 맥주를 시켜 마셨다.

그날 밤 음식 값과 술값에 1,468페소를 썼는데 우리 돈으로는 약 4만 원 정도이다. 보통 한 끼에 300-500페소 정도를 쓰니 거금이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다. 아이들은 분위기를 찾았고 나는 값을 많이 따지다보니 먹을 것 때문에 종종 입씨름도 했다. 여행 초기에 아껴야 나중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다음날 아침 9시에 픽업 기사와 숙소 앞에서 만났다. 중형차였기 때문에 세 사람이 타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게다가 새 차라서 승차감이 좋았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마호가니 숲이었는데 초콜릿 힐을 가는 도중에 있었다.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조림을 했는데 나무의 잎이 지붕처럼 도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 서늘했다. 차에서 잠시 내려서 몇 컷의 사진을 찍었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20-30분 지나서 도착한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힐이다. 초콜릿 힐은 4-6월경 초록빛 풀이 초콜릿 빛깔로 변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호와 조개껍질이 퇴적해서 만들어진 석회암 언덕이라 하는데 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토질에 칼슘 함량이 많아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땅이라서 어찌 보면 민둥산 같기도 했다. 태고적의 신비를 지닌 구릉이 천여 개나 된다하니, 세계의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코스는 나비 박물관이었는데 함평 나비 축제에 비해 매우 썰렁한 곳이었다. 나비의 변태과정을 볼 수 있었으며 애벌레를 손바닥에 놓고 사진도 찍었다. 정원에서는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잡아도 도망가지 않았다. 관광객들의 얼굴 위에 올려놓거나 머리에 얹어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도 사진을 찍은 다음 나비 박물관을 나와 행잉브릿지로 향했다.

행잉브릿지는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인데 대나무로 엮어져 있었다. 본래 건너편 마을로 가기 위해 만든 다리라는데 수입을 위해 관광객에게 개방했다 한다. 철제 구조물을 밑에 깔고, 엮은 대나무를 위에 깔아 전혀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흔들렸기 때문에 건너는 동안 기분이 아찔했다. 일부러 뛰는 사람이 있어서 다리가 심하게 요동치기도 했고 고함소리가 터지기도 했다. 그 아래쪽에 펼쳐져 있는 강이 유명한 로복강이다.

행잉 브릿지를 건너서 잠시 쉬는 동안 코코넛 즙을 마셨다. 코코넛은 단단하기 때문에 낫처럼 생긴 도구로 주둥이 부분을 잘라낸 후 입을 대고 마시거나 빨대를 꽂아 마신다. 나도 즙을 다 마신 후 다른 사람들처럼 안쪽을 긁어 먹었다. 우유 맛과 비슷한 속살은 계란 흰자위처럼 부드러웠다. 새파란 코코넛보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코코넛의 속살이 훨씬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다시 다리를 건너오니 벌써 12시가 넘어 있었다. 다음 코스는 로복강이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로복강은 투어는 보홀 2편에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