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여객기에서 내려다 본 제주시에는 불빛이 가득하다. 

청주공항은 지나치리만치 조용했는데 제주공항은 정반대였다. 고음으로 대화를 하는 건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톤의 중국어와 한국어가 마치 시장터를 방불케 했다. 아들과 나는 렌터카 대여를 위해 공항의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가 즐비했는데 그게 다 렌터카였다. 노상에서 대여를 하고 있어서 다소 웃기는 풍경이었다.

면허증을 발급받은 지 일 년쯤 되었지만 아들은 자가용이 없기 때문에 운전경력은 많지 않다. 종종 대여를 해서 차를 몰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이 운전대를 잡자마자 몇 가지 주의사항을 얘기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들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을 수도 있겠다싶다. 나는 조수석에 십오 년 이상 앉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면허가 없으니 말이다.

20년 만에 다시 보는 제주. 제주시의 시가지는 여전히 이국적인 풍경이다. 나는 아들에게 아직 이르긴 하지만 저녁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들은 흑돼지를 먹을까, 회를 먹을까 묻는다. 일단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가기로 했다.

동문시장은 제주공항과 제주여객선 터미널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다. 평일 초저녁이라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문 닫은 가게는 거의 없었다. 미리 떠놓은 횟감 그릇이 줄줄이 놓여있었는데 종류가 다양했다.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아무래도 밥을 먹고 가는 게 낫겠다싶어서 다소 허름한 횟집으로 들어갔다. 규모에 비해 일하는 종업원이 많은 가게였다. 대부분의 횟감이 대어라서 미리 잡아놓는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5만원에 밥과 찌개까지 포함되어 있다하니 괜찮을 듯 싶었다.

스키다시로는 얇게 포를 뜬 갈치회가 나왔는데 표면이 마치 은박지처럼 반짝거렸다. 삶은 딱새우와 방어튀김이 나왔고 흔한 꽁치구이도 나왔다. 아들이 운전을 하기에 청하 한 병을 시켜서 나눠 먹었다. 내가 두 잔을 먹었고 아들이 나머지를 마셨기 때문에 식사 후에 동문시장 주변을 돌았다.

시장에서 가까운 해변에는 횟집들이 즐비했는데 메뉴에는 중국식 한자가 함께 표기되어 있었다. 터미널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제주도의 관광객 절반은 중국인인 것 같았다. 아들은 중국인들이 제주도의 일부를 점령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제주도에서 외국인들의 투자이민을 받는데 특히 중국인들이 부동산을 많이 구입하기 때문에 걱정이라는 뜻이었다. 아들의 얘긴 즉, 그들에 의해 난개발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이고, 또 그들이 사업을 하면 국부유출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글로벌한 시대이니 우리가 그런 말을 나누는 것조차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내 딸도 이미 캐나다 영주권 취득을 위해 애쓰는 중이니 말이다.

숙소를 가는 도중 이차선 도로에서 음주측정이 있었다. 음주측정을 끝낸 아들이 등골이 서늘했다면서 다음부터는 아예 마시지 않겠단 말을 했다. 음주측정을 상상하지 않았던 나도 좀 놀라기는 했었다.

첫 숙박업소는 동문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텔이었는데 지어진지 일 년이 채 안되어서 내비게이션에는 없는 호텔이었다. 호텔의 높이는 10층 가까이 되는 것 같았는데 지하 주차장의 규모는 몹시 작았다. 마침 앞쪽에 공영주차장이 있어서 거길 사용했다.

방은 무척 깨끗했는데 에어컨 겸용 온풍기가 천장 바로 밑에 붙어 있어서 겨울의 숙소로는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더운 바람이 얼굴을 덮치곤 했기 때문에 숨을 쉬기 불편했고, 침대도 차가웠기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더운 바람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바람은 아래쪽에 머문다는 가벼운 상식이 무시된 숙소였다. 물론 온풍기조절을 잘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장려하고 싶은 난방방식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이 핫텔에서 예약한 숙소였는데 사만원이 채 안 들었기 때문에 그래도 감지덕지(?) 할 수밖에 없었다. 핫텔은 호텔,리조트,콘도 등 숙박업소를 예약하는 사이트인데 당일에 깜짝 세일을 하기 때문에 잘만 이용하면 좋은 숙소를 싸게 구할 수 있다.

이튿날 아침에는 자매식당이라는 곳에서 돼지고기 국수를 먹었다. 양이 모자랄까봐 하나는 곱빼기로 시켰다. 국물이 담백했고 얹힌 고기의 양이 꽤 많았다. 함께 시켰던 비빔국수에는 멸치육수가 따라 나왔는데 맛이 진했다. 돼지국수가 싫은 사람은 멸치국수도 좋을 것 같았다. 가끔은 손님들이 가게 앞에 줄지어 서 있기도 한다는 데 평일이라 그런지 약간 붐비는 정도였다.

아들은 유명한 맛집이 어디어디쯤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나를 위한 배려차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공사에 취업한 아들은, 직계가족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며 아무 때라도 제주도에 가자는 말을 했었다.

나는 이십대에서 사십대 초반에 걸쳐 제주도 여행을 다섯 번 정도 했기 때문에 준비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아들이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제주도의 서해안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