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사오십 분 달려서 도착한 곳이 호이안 버스터미널. 시골 읍내의 자그마한 규모의 터미널처럼 버스가 몇 대 되지 않았다. 도심의 도로를 꽉 메운 오토바이가 버스터미널을 한산하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각 가정마다 오토바이가 있다면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될테니 말이다.  

외곽인 터미널에서 호이안 시내를 향해서 걸었다.  아들은 여름에 왔던 곳이라 길에 익숙하다. 점심을 먹을 음식점과 마사지업소도 이미 정해져 있다. 약간 더웠기 때문에 우리는 건물의 그늘이 드리워진 인도 쪽으로 걸었다. 며칠 전에 검색했던 날씨에서는 소나기가 예고되어 있지만 하늘이 맑다. 인도 곳곳에 오토바이가 전시되어 있어 행인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마사지 숍. 점심 먹기에 좀 이른 시간이라 한 시간만 마사지를 받고 식당에 가기로 했다. 숍에 들어서자 여주인이 한국말로 호들갑을 떤다. 아들이 다시 왔다고 하니 기분이 매우 좋은가 보다. 태국에서 보다는 더 정성스럽게 마사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사람당 팁 2불까지 합쳐 15000원 정도이니 태국에 비해 상당히 비싼 셈이다. 태국에서는 한 사람당 6000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팁은 비슷하게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사지숍을 나오던 아들이 내일 한 번 더 마사지를 받자고 하자 나는 이틀 연거푸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마사지 숍을 나와 오 분 정도 걷다보니 포슈아라는 음식점이 보인다. 가게 앞에 서 있던 종업원이 우리에게 한국말로 어서 오시라고 한다. 잠시 후 우리 옆자리에 유모차를 끌고 들어온 부부가 앉는데 한국인들이다. 포슈아도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맛집이라고 한다. 쌀국수와 튀긴 만두를 시켰다. 음식은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부터는 천천히 걸으면서 두루두루 구경했다. 아들이 지난여름에 찍었던 장소라면서 나를 그 자리에 서라고 한다. 알고보니 며느리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란다.  나는 아들에게 예쁜 풍경을 내가 훼손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필름에 담기기 위해 웃는 표정을 지었다.

베트남의 전통복을 입은 한국 아가씨들이 우리를 스쳐간다. 어찌나 예쁘던지 아들에게 물었다. 다낭에 올 때 며느리도 전통복을 사 입지 않았으냐고. 내 생각에는 참 잘 어울릴 것 같다.  이만 원 정도면 전통복을 하나 구매 할 수 있는데, 두어 시간 정도이면 몸에 딱 맞게 만들어 준단다.  아들과 며느리는 전통복을 사 입을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다.

호이안을 만끽하려면 밤이 되어야 한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가서 시간을 떼우기로 했다. 나는 이미 지나 온 골목의 바에 가서 한잔 마시자고 했다. 그늘져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골목에 자리한 칵테일바이다. 안주가 과자와 봉지에 담긴 마른안주 몇 종류 밖에 없는 싸구려 바이지만 분위기가 그리 나쁘진 않은 곳이다. 

오픈되어 있어서 들어갈 필요없이 의자에 앉으면 된다. 칠판에 한글 메뉴도 있다.불이 켜져 있지만 안쪽은 어두컴컴하다. 앉아서 둘러보니 안쪽으로 젊은 아가씨들이 기울어진 소파에 눕듯 앉아있고, 내 앞쪽의 테이블에는 노부부가 얘기 중이다.   

한잔을 더 시킨 후 아들더러 꼬치를 사오라고 했다. 역시 우리가 지나쳐 온 골목인데 화덕의 연기 틈에서 꼬치산적이 익어가고 있었다. 한참 후 돌아 온 아들이 꼬치구이를 내게 내밀면서 말한다. 바가지를 쓴 것 같다고. 대충 계산해보니 2만동쯤 바가지 쓴 것 같기는 하다. 2만동이라고 해봐야 천원밖에 되지 않으니 그러려니 생각하자고 말한다.  

마침 골목을 지나던 서양인 여행객이 사진을 한 장 부탁한다. 이상한 내 옷차림이나 허름한 바가 그 여인 눈에는 나쁘지 않나보다.  나는 기꺼이 포즈를 취한다. 사진이 그 여인네의 앨범에 끼워지거나 아니라면 컴퓨터의 휴지통으로 버려질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듯.

건너편의 새카만 기왓장에 돋은 풀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옆을 천천히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말한다. 200년 정도 된 건물들이라고. 벽과 지붕이 새카매서 불난 건물들이 많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윽고 상가 앞에 장식으로 매달은 종이등에 불이 하나 둘씩 켜진다. 골목에서 나오니 가로수에 매달린 수많은 등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색색의 종이등이 호이안의 상징물인가 보다.

해변으로 나오니 작은 배의 선주 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강 주변을 걷기만 해도 좋은데 배를 왜 타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사위가 어두워지니 주변의 불빛이 지나치리만치 유혹적이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서 다리를 건너는데 떠밀려 간다. 우리가 밀려가듯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이 밀려온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면  떠밀리면서 계속 강 주변을 맴 돌았을 것 같다.

겨우 찾은 화장실의 줄이 길다. 내가 쏟아낸 오물은 내가 치워야 하는 구조. 수도꼭지와 물통이 준비되어 있고 바가지도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한다. 아직 버스가 있겠지? 라는 말을 하면서도 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마음이 바빠서 그런지 올 때보다 거리가 훨씬 멀게 느껴진다. 땀을 흘려가면서 한 시간 정도 걷자  멀리 터미널이 보인다.  

터미널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피니쉬라고 말한다. 무시하고 버스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서 문이 열려있는 버스로 다가갔다. 기사가 버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있어 물어보니 운행종료라고 한다. 겨우 7시 40분인데 너무한다싶다.

답답한 마음으로 터미널에서 나오는데 아까 끝났다고 말하던 남자가 다가온다. 알고 보니 그는 택시 기사이다. 우리는 흥정을 시작했다. 기사는 다낭 시내까지 38만동을 달라고 한다. 등을 돌리니까 35만동을 얘기한다. 우리는 고개를 저으면서 30만동을 얘기했다. 그러다가 절충된 돈이 32만동.

택시로 오는데 상당히 멀다. 삼심 분 이상 걸려 도착한 곳이 우리가 저녁을 먹을 음식점. 규모가 큰 레스토랑이다. 내가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해서 시킨 게 스네이크 피쉬. 아들이 원해서 시킨 음식 두 가지. 하나는 돼지고기와 새우를 라이스페이퍼에 놓고 도르르 말은 음식이고 하나는 짜조라는 음식인데 채소와 함께 나왔다.

내가 시킨 생선은 메기처럼 생겼는데 비늘까지 바삭하게 튀겨져 나왔다. 모양이 험상궂어 먹기 거북하다. 그렇지만 가격이 우리 돈으로 일만 원이 넘으니 다 먹어야만 한다. 박하맛 채소와 망고, 오이,깻잎, 상추 등 다양한 채소가 나와서 싸서 먹는데 생선의 살이 너무 싱겁다. 종업원들의 바디랭귀지에 의하면 어항에서 바로 건져서 튀긴다는 것 같다. 찌개를 먹고 싶었는데 생선 종류는 그것밖에 없어서 선택한 메뉴였다.

 맥주 두병까지 마셨지만 계산서 용지를 보니 28000원 정도이다. 아들은 음식 값이 저렴하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음식점에서 나와서 길거리 공원으로 갔다.

바다를 끼고 있는 그 공원에는 꽃이 잘 가꿔져 있었는데 국화 샐비어 코스모스 등등 대부분 가을꽃이다. 마실 나온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있다. 가끔 코트나 겨울 잠바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들은 얇은 상의에 반바지를 입은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  우리도 마실 나온 그들처럼 꽃 사이사이를 한참동안 누비면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