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는 많은 공원이 있다. 그중 가장 크고 멋진 공원이 스탠리 파크이다. 밴쿠버의 스탠리파크는 가장 마지막으로 택한 여행지였다. 스탠리 파크는 밴쿠버의 한 자락이며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고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공원이다.

노스밴쿠버나 웨스트밴쿠버로 가는 길이 공원을 관통해 있었으므로 스탠리파크는 이미 낯익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잉글리시베이나 선셋공원이 스탠리파크와 붙어있으니 내게 있어서 스탠리파크 여행은 일거삼득이었다.

버스를 19번으로 갈아 탄 후 종점에서 내리니 스탠리파크.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숲속에서 내렸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마침 눈길을 끄는 게 있었는데 할로윈을 위해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물품들이었다. 유령을 닮은 가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그 부근에서 할로윈 전야제가 열리고 미니어처를 탈 수 있다한다. 밤에 고스트트레인을 타는 거야말로 할로윈축제에 걸맞은 놀이겠지만, 나는 공짜라 해도 사양할 것 같다.

조금 걷다보니 숲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나온다. 반대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인데 육교처럼 되어있다. 그곳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것 같다. 우리는 바닷가 쪽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숲길을 한참 가야하고 그 길 끝에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길을 따라 가다 중간에 습지를 발견했고 뒤뚱거리며 걸어오던 청둥오리를 만났다. 나는 물었다. “너 혼자서 어디 가니?” 오리는 잠깐 멈추더니 사진촬영만 응해주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뒤를 돌아보니 오리가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몇 마리의 다람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녀석들을 사진에 담았다. 내가 벤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동안 그 녀석들이 다가와서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한다. 먹이를 달라는 거겠지만 손에 아무것도 없으니 민망할 수밖에.

늪지의 풀은 허리가 반쯤 잠겨 있었다. 청둥오리 몇 마리가 수영을 즐기고 있었고 주변의 쓰러진 나무 등걸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앉아있었다. 자세히 보니 새들은 우스운 모양새로 앉아 졸면서 볕바라기를 하는 중이었다. 돌아서면서 마주친 청설모조차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곳의 동물들은 인간과 자신들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목을 벗 삼아 사진을 찍다, 걷다를 반복하다보니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보이기 전에 사람소리가 들렸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바닷가를 따라 길이 나 있었는데 윗길은 자전거 도로였고 아랫길은 산책로였다. 펼쳐진 바다의 건너편에 도시가 있었고 멀리 다리도 보였다.

산책로의 한쪽은 숲이고 다른 쪽은  바다라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자동차 길은 아예 따로 있었고 멀찌감치 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인디언추장 바위까지 가기로 했다. 꽤 걸어야 했지만 그곳까지의 거리는 스탠리파크의 산책로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멀리 추장 바위가 보인다. 내 눈엔 갓 쓰고 도포를 입은 노인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어느 해변에 서 있었다면 분명 선조 중 훌륭한 분의 이름을 붙였을 것 같다. 나는 인디언추장을 등지고 서서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해변의 벤치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공통점은 여행이 끝날 무렵엔 늘 돈에 허덕거린 다는 것. 그 탓에 아침 일찍 김밥을 말 수밖에 없었다. 김밥을 먹은 후 순하게 탄 원두커피를 마셨다. 굳이 궁합을 따지자면 50점도 안 될 것 같은 밥과 후식.

옆 벤치에 나름 잘생긴 청년이 앉아있다. 그가 우리를 몇 번 힐끗거렸는데 영 노숙자 같은 느낌이다. 밴쿠버에는 노숙자들이 참 많지만 썩은 냄새를 풍길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러운 차림의 그 남자를 노숙자라고 단정하면 곤란하다. 나는 그 남자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벤치에 놓여있는 배낭과 청바지를 보면서 옆의 남자가 여행객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보면 꼬질꼬질해지기 마련이니까.

잉글리시베이와 썬셋비치를 지나오는데 모래사장에 낙엽이 흩뿌려져 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가을이 깊어버렸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