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삶은 소설적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공상 속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극히 개인 적인 일인 사랑조차도 소설이나 영화처럼 생각해야만 한다. 물론 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하는 사랑을 드라마나 영화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런 부면이 글쟁이만의 전유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공상이 많은 나는 상황을 부풀리게 되고 결국 비관적인 결과물로 만들어 버린다.

  나의 내면에 들어앉은 모순이 주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내면의 모순에 상상력이 가미되면 형체를 갖추게 되는데, 나는 그것을 계속 성장 시킨다. 뭐랄까. 마치 암 덩어리가 내 몸에서 양분을 취하며 자라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엄청난 갈등을 가져다주는데 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랑이라는 걸 포기하고 만다.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니 사랑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 한 건 그럴 때마다 소설 한 두 편은 어김없이 건진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나지만 표면적인 삶은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수년씩 별 탈 없이 산다. 마을사람과 얘기를 주고받지 않는 건 아니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소설을 위해 어디서든 사람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들에게서 뭔가 얻어내기 위해 내 것부터 꺼내 보여준다. 어쩌면 나는 연기자일 수도 있다. 즐거움을 얘기할 땐 웃고 슬픔을 얘기할 때면 어김없이 눈물지으니까.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에서 진솔함을 느끼고 따라서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쏟아내게 될 것이다. 가슴에 담긴 고통이나 슬픔은, 이해해 줄만한 사람 앞에서는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소설가는 사람들이 제공한 재료들을 정직하게 써서는 안 된다. 소설은 재료 플러스 엄살과 과장이다. 엄살과 과장은 재료 속에서 효모 역할을 한다. 설탕 한 스푼으로 만들어내는 솜사탕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6년 전이든가? 한 남자가 내 단편을  읽은 다음 내게 물었다. 혹시 작가께서 경험한 일이 아닌가요? 부랑이라는 작품이었으니 그 질문에 해당되는 소설 속의 인물은 여중생이었을 것이다. 전혀요, 라고 답을 했는데 정말 전혀, 이다. 물론 성에 대한 호기심은 많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영향을 받은 보수적인 어머니의 모범적인 딸이어서 이십대 이전에는 남자의 손도 잡기 어려웠다.

  그 남자는 전화기라는 매개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몹시 껄끄러운 장면에 대한 질문을 쉽게 했을 것이다. 마주보면서 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니까. 그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경험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하니 내 의도가 나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품 또한 엄살과 과장이 적절히 배합된 소설이니까.

  사람들에게서 재료를 얻어내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다. 때로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는다. 괜히 그들을 찔러 보기 때문이다. 찌르는데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렇게 얻어낸 재료일수록 더욱 귀하게 쓰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상처를 받기위해 글쟁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예술가는 제 상처를 파먹고 살아야만 하니까.

  앞으로도 나는 소설의 재료를 위해 사람과의 접촉을 시도해야만 한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든 상관할 필요도 없다. 나는 글쟁이이므로. 내가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처럼 떠도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