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폭력물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평이 나 있는 영화는 간간이 빌려다 본다. 그중 일부러 보지 않는 영화가 있다. 바로 '친구'라는 제목의  영화이다. 그 영화가 아들과 관련된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중학 3학년 때 나는 김포의 신설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그건 아들 탓이 아니었다. 내 탓이었으며 남편 탓이기도 했다. 이사를 할 때는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지만 집에서 가까운 학교인데다 학생이 몇 안 되어서 아이에 관해서는 오히려 마음이 뿌듯했다. 내 아이가 선생에게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들은 공부에 별관심이 없었다. 집에서도 늘 컴퓨터와 논다거나 아니면 딴 것에 열중하곤 했다. 내가 보기엔 시간 죽이기 대회가 있다면 장원감이었다. 따라서 학교에서 열등생 취급을 받기도 했는데 그게 억울했는지 내게 그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들은 목동 단지에 끼어있는 초, 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전학을 간 학교의 학생이 고작 네 명이고 전부 남자아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도 갖지 않았다. 물론 아들을 통해 듣는 얘기는 그 아이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었고 날라리라는 정도였다. 수업시간에 밖으로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했을 때도 그저 한심한 아이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아들은 그 아이들과 뭉쳐 다니지도 않았지만 갈등도 별로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실은 내 아들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목동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한 아이네 집이 김포로 이사를 왔다. 제대로 말하자면 그 아이네 가족이 먼저 거기에 와서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목동에 있는 학교로 등교하느라 늘 진땀을 빼고 있었다.( 김포 신도시에도 신설학교는 몇 되었지만 전학을 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했다. 대신 여건이 좋지 않는 학교는 당일로 전학을 할 수 있었다. 아들이 전학 간 학교는 공교롭게도 퇴학당한 애들만 받은 상태였다. 3학년 공간을 비워둘 수 없어 전학 오는 애들을 받았는데 하필 문제아들만 왔던 것이다.)

  짱은 짱을 알아본다던가? 아무튼 내 아들의 말을 듣고 전학을 온 친구는 첫날 도전장을 받았다. 수하로 들어오라는 한 녀석의 말을 거절했던 이유였다. (중학 3학년일 뿐이었지만 그 애들 네 명은 조직이었으며 그 중 한 녀석이 우두머리였다. 게다가 전학을 온 아들의 친구도 날라리에 속했다.)

  맞짱을 뜨자던 장소는 그 학교에서 어른 걸음으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일대일 싸움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아들은 사태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토요일 방과 후라서 학교는 조용했다. 아들이 친구와 학교에 도착했을 때 네 명의 아이들이 눈에 뜨였다. 침묵이 이상하게 느껴져 둘러보니 그 아이들 손에 긴 막대기 같은 게 쥐어져 있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아들은 설마라는 생각을 했다. 아들의 친구가 맞짱을 뜰 장소인 체육관 계단을 밟았고 첫 번째 몽둥이세례를 받았다. 친구가 넘어지면서 체육관의 문이 닫혔다. 순간 아들은 몸을 돌려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담임과 함께 승용차로 다시 그 장소까지 왔을 때 친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친구는 머리가 깨졌고 팔이 부러졌다. 다행히 급소를 맞지 않아서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그 후 담임과 그 아이의 어머니와 내가 자리를 함께 할 시간이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이미 용서했고 합의했다 한다. 그 아이들은 정학 조치만 당했다.

  “내 아들이 그런 지경이었다면 나는 그 아이들을 구속 시킵니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담임은 내 말에 대해서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가장 걱정되는 아이는 재하입니다.”

  내 아들이 걱정이라는 담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들의 친구는 전학을 가버리고 정학 조치를 당했던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나오기 때문에 걱정이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아들이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는 자체도 아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었다. 

  그 후 나는 아들과 그 사건에 대해 여러번 의견을 나누었다. 아들은 그 문제와 관련해서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내 아들은 외향적으로는 순진하고 착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속이 단단한 아이다. 아이는 거의 싸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이 맞고 다닌 적도 없다. 물론 아들은 나를 닮아 덩치가 좀 크기도 하다.

   이학기가 되자 아들의 반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3학년 학생수가 5명에서 졸지에 18명이 되었다. 대다수가 서울에서 왔는데 그 아이들은 순전히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전학을 왔던 것이다. 아들이 받은 상은 모범상과 봉사상이었다. 만약 5명만 졸업을 했다면 우등상도 포함되었겠지만.

  결국 학교라는 곳도 알고보면 그 사회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들 흉내를 내거나  닮아가는 것이다.

  내 아들은 비록 우등상을 받지 못했지만 세상에 나가면 소금 같은 역할을 할 거라 믿는다. 당시 중학 3학년이었던 아들의 행동은 나름대로 현명했으니까.  다만 그 사건으로 인해 아들이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