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풍경이 눈 내린 아침 같다.

자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가 발을 다시 신발에 구겨 넣었다. 발에서 재래식 화장실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서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음료로는 사과주스 오렌지주스 커피가 있다. 딸과 각각 사과주스 오렌지 주스를 달라 했다. 사위는 슬라이스 햄을 주문해서 먹는다. 아이처럼 혼자 먹는 사위를 딸은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나눠 먹는 습관이 배어있는 내겐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 야박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래도 사위에게 백포도주 한잔은 얻어먹었다.

록키산맥의 위용을 비행기에서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산맥 사이사이에 구름이 내려앉아있고 정상부근에는 흰 눈이 깔려 있는데, 눈은 산등성이를 따라 날카로운 선을 만들고 있다. 푸른색과 검은색 반반이 섞여있는 산을 구름떼가 뒤덮기도 한다. 가끔씩 구름 위에 솟아 오른 산봉우리가 가깝게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도 한다.

분명 작년에 내린 눈은 맨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 아래 재작년에 내린 눈이, 그 아래 아래에 십 년 전 눈, 그런 식으로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맨 아래쪽에 파묻혀 있는 눈은 대체 그 자리에 얼마동안 있었을까.

밴쿠버에서 몬트리올까지는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인천공항에서 마닐라보다는 더 걸리고, 인천공항에서 방콕보다는 조금 덜 걸리니까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땅은 미국보다 더 넓은데 인구는 10분의 1정도이니 무지 한적한 나라라고나 할까.

시차가 3시간이나 되다보니 가는 날은 하루가 21시간 밖에 안 되고 대신 돌아오는 날은 하루가 27시간이나 된다. 몬트리올 공항에는 바깥사돈이 마중 나올 예정이다. 프랑스식 인사법을 잘 몰라서 걱정이 된다. 게다 내가 영어회화도 거의 못하니 문제이다. 바깥사돈은 고공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고공공포증 때문에 사위는 창밖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겁 많은 것과 고공공포증은 다른가보다. 난 창밖을 봐도 아무렇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가 내린 몬트리올공항은 매우 한가했다. 국내선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싶다. 딸 내외와 함께 다니니 여행의 맛이 사라지는 것 같다. 불안감이나 초조감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내게 스며들 여지가 없으니 말이다.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니 배가 둥그스름하게 튀어나온 중년의 남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가 바로 프랑스배우 장 르노와 비슷하게 생긴 바깥사돈이다. 나는 그와 프랑스식으로 인사를 하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는 우리를 태우고 가는 동안 아내와 몇 번이고 통화를 했다. 불어라서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지 다정한 부부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점심을 준비하는 중인 것 같았는데 식탁에 오를 음식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한 시간 정도 되자 차가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띄엄띄엄 집들이 있었는데 무척 조용한 마을이었다. 오솔길처럼 꾸며진 길로 접어들자 깃대가 보이고 태극기와 퀘벡의 상징인 푸른 줄이 그려진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캐나다의 깃발은 단풍잎이 새겨져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태반인 퀘벡주의 깃발은 전혀 다르다. 퀘벡기의 네 귀퉁이에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백합꽃이라한다.  사돈댁은 깃대에 매달린 깃발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알리고 있었다.

마당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위의 새어머니는 몸매가 예쁘고 무척 세련된 중년여성이었다. 새어머니라 해도 내게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6살 때 부모가 이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하니 사위에겐 친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볼에 볼을 맞대는 인사를 나누었다.

불독처럼 생긴 개 한 마리가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잠깐 쓰다듬어 주었다. 짐을 내려놓느라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내부가 멋진 집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이 돋보이는 문이 아름다웠다. 사돈은 나무로 하는 작업을 맡았고 안사돈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미는 부분을 맡아서 했다고 한다.

안사돈은 지하실에 공방을 꾸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재료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씩 내다 팔기도 한다 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쓰는 글은 판로를 개척하는 게 어려우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 집은 사돈부부의 손길에 의해 재탄생된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바깥식탁에 음식을 차렸는데 바비큐 꼬치구이가 주 메뉴였다. 큰 접시에는 열대지방 쌀 안남미로 지은 밥이 듬뿍 놓여 있었다. 그 위에 바비큐 고기가 놓였고 반찬은 식초와 설탕에 버무린 채소 한 종지였다. 내가 보기에 식탁이 주는 느낌은 썰렁함 그 자체였다. 다행이 와인을 한잔씩 따라 놓으니 그럴듯해 보이는 식탁이 되었다. 

상황을 보건데 안사돈은 요리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위가 요리사이지만 요리하는 음식은 많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게 프랑스스타일인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너덧가지 반찬을 놓고 먹으니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들 생각에는 우리가 비합리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비타민, 그 외 무기질을 과일과 음식에서 섭취하면 되니 말이다.

 밥을 먹은 후 밖을 둘러보았다. 바깥의 식탁과 가까운 곳에 바비큐 아궁이가 있고 간단하게 씻을 수 있게 작은 개수대도 갖춰져 있다. 가끔씩 파티를 즐기기 위해 몇 가지 도구를 갖춰놓은 것 같았다. 결혼식 행사는 마당의 잔디밭에서 치를 예정인데 큼지막한 호수가 바로 앞에 있어서 멋진 풍경이었다. 가끔씩 소형헬기가 굉음을 울리며 호수 위를 지나가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우선 승합차를 한 대 빌려야했다. 결혼식 전까지 며칠간 몬트리올 주변을 둘러 볼 예정이었고 결혼식을 마친 후에는 퀘벡을 갈 예정이었다. 사위가 운전하고 아들과 딸, 애들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 타고 움직일 것이니 신혼여행을 겸하는 여행이었다. 미국 엘에이 남동생의 가족도 합류할 예정이다.

승합차를 빌리기 위해 렌터카 사무실에 들렀다. 나는 사무실 밖에 나와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도로가 죽 뻗어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건물이 없고 도로주변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서 좀 황량한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차를 끌고 집으로 왔다.

집에 차를 세워 둔 후 결혼식에 쓸 물건들을 렌트하러 갔다. 결혼식 전날까지 설치를 마쳐야하기 때문에 미리 빌려야 했다. 사돈의 트럭은 뒤쪽에 자리가 있어 네 명이 타기에 그리 비좁지 않았다. 우리가 간 가게는 웨딩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빌릴 수 있는 가게였다. 그 가게에는 조명등이나 접시까지도 다 준비되어 있었다.

하긴 예식장이 따로 있는 나라가 아니니 빌리는 게 당연했다. 바깥사돈은 기둥과 차양 막, 흰색 천, 테이블과 흰색 의자 따위를 빌렸다. 친아버지가 그런 부분을 맡았고 친어머니는 부케와 케이크, 그 외 장식품을 맡았다는 것 같았다. 나는 다섯 가지 음식을 만들기로 했으니 십시일반이라고나 할까. 예식은 24일 토요일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식사가 끝나고 술을 몇 잔씩 마셨다. 바깥사돈은 럼콕이라는 술을 즐겨 마셨는데 배가 커다란 공처럼 튀어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럼콕은 럼주와 콜라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었다. 솔직히 와인보다 더 마시기 좋은 술이 럼콕이었지만 나는 자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돈부부와 함께 지내야하니 말이다. 그날부터 사돈부부는 마당의 캠핑카에서 잤다. 불독도 함께 잤는데 솔직히 개까지 합숙하기에는 비좁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