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속의 여승
나는 사찰로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사찰에서는 옛것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사찰의 재료가 되는 나무나 돌, 쇠붙이 등에는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있으며 사찰이 지어질 당시 그 일에 참여했던 손길을 느낄 수도 있다.
여행 중 사찰에 들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그녀 또한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텐데 아직도 비구니일까? 스물 하나에 만난 그 여승은 얼굴에 마른 버즘이 피어있었다. 함께 설악산 근처의 신흥사에 가던 길이었다. 당시 나는 그 여승과 공부하는 처지였다. 나는 여승과 동갑이었으며 하던 공부는 불교와는 관계가 없다.
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자주 피워 올리는 처녀였다. 내 보기에 참으로 맑고 순진한 이미지였다. 여승인 고모가 절에 데려갔을 때 그녀의 나이는 열 여섯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그녀에겐 세속의 때가 묻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던 건 여승이 되었던 이유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간에 그녀와 합류를 했었는데 그녀에겐 동행이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던 청년을 몇번이고 쳐다봤다. 청년은 나 때문에 그녀와 작별인사를 해야했다. 다음에 꼭 봐요, 라는 말을 남기며 방향을 달리하던 그 청년은 몇번이나 그녀를 돌아봤다. 나는 그 청년의 표정에서 아쉬움을 보았다.
사연인 즉 길을 오던 중간에 뒤따라오던 청년이 말을 걸었다 한다. 당시 그녀는 까까머리에 승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예쁘진 않았지만 얼굴이 희고 몸의 선이 가냘픈 여승이었다. 그 청년과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청년이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한다. 그녀는 그 청년과 헤어질 때까지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도 아쉬움이 안개처럼 떠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와 신흥사에 들렀을 때 나는 대웅전 문앞에 서 있었고 그녀는 법당으로 들어가 삼배를 했다. 법당을 나서는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부처님은 왜 이리 자비로우실까.' 그녀가 삼배를 하면서 그 청년과의 사연을 털어내어 버렸는지 어쨌는지는 묻지 못했다. 다만 함께 산을 내려오면서까지 내 마음은 뒤숭숭했다.
수업이 종료되면서 함께 공부했던 모든 사람들은 각자 흩어졌다. 이후 나는 그녀를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어느 절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가지 못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동안 나는 아이를 키우는 그녀를 상상하곤 했지만, 단언컨데 그녀는 부처님을 떠나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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